[뉴스룸에서-노석철] 정권 말 검찰의 처신

최재경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젊은 시절부터 ‘뒤탈 없는 검사’로 불렸다. 손에 피를 묻히는 특수부 검사들이 늘 시달리는 험담도 그에겐 거의 없었다. 신중한 성격과 치밀한 수사력 때문이다. 한때 이런 얘기까지 돌았다. “최 검사가 맡으면 꼬여있는 사건도 결론이 명쾌하게 나오고, 그 결론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도 ‘칼잡이’의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2007년 말 서울지검 특수1부장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및 도곡동 땅 의혹 수사를 맡았다. 당시 이를 듣는 순간 “유능한 검사 한 명의 발목이 꺾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감고 주먹 휘두르는 대선 정치판에 검찰이 엮이면 담당 검사는 순탄치 못한 길을 걷는다. 이는 5년 주기로 되풀이됐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은 1997년 대선 전 ‘DJ비자금’ 사건 수사유보를 발표했다. 대선까지 수사를 끝내기 어렵다는 이유를 대며 사실상 ‘검찰의 정치 불개입’ 선언을 했다. 일각에선 DJ 측에서 “검찰이 수사하면 YS는 망명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협박한 결과라는 얘기도 들렸다. 그 발표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이었다. 김 전 총장은 이후 DJ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했지만 옷 로비 사건 때문에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옷을 벗었다. 권력을 내준 쪽의 분풀이 때문인지 옷 로비 사건은 검찰수사→특검→재수사로 이어지며 검찰을 괴롭혔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수사를 맡았던 박영관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도 ‘병풍검사’란 꼬리표에 곤욕을 치렀다. DJ정부에서 ‘검찰의 황태자’로 불렸지만 참여정부에서 줄곧 야당의 공격에 시달렸다. 현 정부 들어선 전주지검장에서 제주지검장으로,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연이어 강등되자 2009년 1월 “MB는 겸손하라”는 말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2007년 대선에서는 최 부장이 이런 악역을 맡았다. BBK 사건은 어떤 결론이 나와도 여야 한쪽의 뭇매를 맞는 수사였다. 물론 최 부장이 내린 결론은 특검에서도 유지됐고, 정봉주 전 의원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누가 다시 수사해도 결론을 뒤집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새누리당 친박계나 민주당 인사들은 “BBK 수사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할 정도로 앙금이 깊다.

그가 다시 정권 말기 대검 중수부장으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구속했다. 현 정부 ‘실세 중의 실세’인 2명을 잡았으니 적잖은 성과다. 그럼에도 뭔가 개운치 않다. 그들의 힘이 천하를 뒤흔들 때는 숨죽이고 있다가 정권말기에 힘이 떨어지자 사냥을 시작한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들을 잡아넣어 세상과 단절시키고, 더 큰 의혹을 덮으려 한다는 의심도 여전하다.

이는 현 정부에서 되살아난 ‘정치검찰’ 이미지와 검찰의 라인업 때문이다. 검찰은 손대는 사건마다 편향 논란을 빚으며 집권여당조차 ‘철없는 검찰’이라고 한탄하는 처지가 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고려대 출신의 한상대 검찰총장,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 체제는 검찰 수사·인사의 공정성까지 의심받게 한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온갖 고소·고발 사건이 밀려들 텐데 공정성을 의심받으면 검찰은 정치공방의 무대로 변질된다. 올해는 어떤 검사가 정치권의 고소·고발 사건을 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맡아 ‘정치 검사’란 오명을 뒤집어쓸지 딱하다. 차라리 9월쯤 검찰이 먼저 ‘정치권 고소·고발 수사는 선거 후로 미룬다’고 발표해버리는 건 어떨까.

노석철 편집국 차장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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