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여는 ‘1세대 일러스트레이터’ 홍성찬씨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그림 그리려 노력”
“출판에서 일러스트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1988년 출판미술협회 발족 전만 해도 출판사들은 일러스트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일이 허다했지요. 일러스트 원화는 작가 소유인데 출판사들은 사용료만 지불했으면서도 소유권이 있는 것처럼 행세했어요. 인쇄를 마치면 보관은커녕 발로 밟고 다닐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지요.”
8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보림홍성찬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여는 한국 ‘1세대 일러스트레이터’ 홍성찬(83)씨는 원화(原畵)의 유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그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전시회에 맞춰 출간된 그림책 ‘토끼의 재판’(보림출판사)이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며 “이제부터라도 일러스트 원화들이 제대로 대접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故) 김영주 이우경 이순재 전성보 삽화가 등과 함께 1950년대부터 활동한 그는 당뇨에 노안이 겹쳐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다. “서너 살 무렵이었지요. 예전엔 곱돌이라고 부르던 석필이 흔했는데 그걸 가지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 올린 채 뒷걸음을 치면서 땅에다 그림을 그렸어요. 소학교를 겨우 마쳤을 무렵에 광복을 맞았고, 또다시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따로 미술공부를 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지요.”
홍씨는 1955년 잡지 ‘희망’ ‘야담’ 등에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전문 삽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삽화 한 컷에 40원을 받았어요. 지금으로 치면 쌀 두 되 값이지요. 겨우 굶지 않을 만큼의 액수였어요.”
홍씨는 지게꾼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그림을 그리자는 생각에서 ‘사실성’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잡지 ‘희망’에 첫 기고할 때 원숭이해 특집기획으로 원숭이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도 실물을 보기 위해 동물원(당시 창경원)을 찾았다. 마감시간에 쫓긴 나머지 아침 일찍 갔더니 개장을 하지 않아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급하게 스케치를 하고 집에 가서 작업을 한 뒤 작품을 넘겼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단다.
역사물 일러스트의 경우 제대로 고증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발로 뛴 것은 물론이다. 궁중역사의 대가 김화진 이상옥 선생을 찾아가 조언을 받았고 민속학자, 정신문화연구원 등 도움이 될 만한 곳은 가리지 않고 다녔다. 그가 그린 ‘난중일기’ 등 각종 위인전은 지금도 이 분야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류재수씨를 비롯한 후배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우리그림책탐험대’를 발족시켜 1세대 작가들의 잃어버린 원화를 발굴하는 등 우리 그림책의 위상을 재정립할 계획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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