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문재인이 사는 길

Է:2012-05-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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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성기철] 문재인이 사는 길

“신사 이미지 앗아간 이-박 ‘꼼수’… 잘못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에 용서 구해야”

민주통합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영혼이 한없이 맑은 사람.” “60년 세파에 욕심 좀 부리고 찌들만도 한데 10대 같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정치권 흙탕물에서 이전투구해 이겨내기에는 너무 깨끗하다.”

이런 인물평에 일면식도 없는 나도 내심 동의해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고 있다는 증거다. 국정수행 능력은 별개로 치고 합리성과 여유, 예의까지 갖춘 신사 정치인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정략과 술수로 무장된 3김(金)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각인돼 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은 소프트 리더십의 소유자다. 노자의 물의 리더십을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봉사와 섬김의 리더십, 청지기 리더십이 그것이다”고 평했다(‘대선 2012, 어떤 리더십이 선택될 것인가’).

이런 평가를 받는 문 고문이 지난주에는 영 엉뚱한 모습을 보였다. 이해찬(당 대표)-박지원(원내대표) 역할분담 합의에 사전 동의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이-박 합의가 당내 인사들로부터 비판을 받자 “담합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담합이 아닌 단합이며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입장정리를 했다. ‘정치적 야합’이란 비난이 몰아치자 “이상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서긴 했다. 이후 문 고문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문 고문은 이-박 합의를 전후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권교체를 위한 효율적인 방안’을 자문해 보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는 이-박 합의가 정권교체로 가는 지름길이란 판단을 했음 직하다. 당내 친노(親盧)와 호남세력의 후원으로 PK(부산·경남) 출신인 자신이 대선 후보가 돼 충청권(이해찬)과 호남권(박지원) 대표선수를 앞세워 선거를 치르는 게 최선이란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지역연합 구상이겠다.

새누리당에서 강력한 영남후보(박근혜)를 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런 전략은 누구나 고려해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야당이 지역연합을 하지 않고서는 집권하기 어렵다는 데 대다수는 공감한다. 1997년 김대중 후보가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연합을 하고,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의원과 손잡은 것도 집권을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문 고문이 이런 생각을 한 것 자체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민주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당명 처럼 민주주의를 제1의 가치로 삼는 정당이다. 원내대표(5월 4일)와 당 대표(6월 9일), 대선후보(8∼9월 예상)를 뽑는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 양대 계파 대주주가 만나 선거를 무력화시키는 합의를 한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명백히 위배되는 일이다. 특히 문 고문으로서는 선수가 심판을 뽑는 데 개입한 셈이다.

민주당은 평생 민주주의를 지키며 살다간 김대중 대통령과 토론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한데 모여 대선 전략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치열한 토론 끝에 이-박 합의와 같은 결론이 나왔다면 대선가도에 엄청난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담합이 아니라 단합이란 주장도 설득력을 갖게 될 터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박 합의는 구태(舊態)이자 꼼수일 뿐이다.

유력한 대선주자가 두 명의 구(舊) 정치인에 휘둘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 고문의 참신한 이미지, 신사 정치인 상을 허공에 날려 보낸 꼴이다. 정치지도자로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는 더 큰 손실이다.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당원과 국민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잠시 미혹에 빠져 판단 미스를 했다고 고백하면 국민들이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국민 앞에 진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 고문이 따르는 ‘노무현 스타일’이기도 하다. 일단 광풍을 피하고 보자며 계속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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