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정신을 온몸으로 살아낸 시인… 철학자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

Է:2012-04-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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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정신을 온몸으로 살아낸 시인… 철학자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

철학자 강신주(45)는 2011년 가을 한 대학에 강연을 갔다가 강연장을 가득 메운 교직원과 학생들 앞에서 시 한 편을 낭독한다. “‘김일성 만세!’/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김일성 만세’ 부분)

청중들의 표정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김수영의 시”라고 해명하자 그제야 안심하더라는 것이다. 김수영이 이 시를 쓴 건 1960년 10월 6일이지만 발굴 공개된 건 2008년이다. 청중들의 표정을 보면서 강신주는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들은 장면 정권 시절을 연상시키는 자기검열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쓴 게 평전 형식의 해설서 ‘김수영을 위하여’(천년의상상)이다. 김수영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만 수백 편에, 평전 또한 10여 종이 나와 있는 마당에 그의 ‘김수영 읽기’는 무엇이 다른가.

그는 ‘자유’와 ‘불온’이란 키워드를 통해 인문학의 주요 정신과 본질을 제시한 김수영이 한국 인문학의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진정한 비극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시작되었다. 김수영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틈바구니 속에서 인간의 자유가 이념에 의해 어떻게 유린당하는지 그 큰 눈으로 여실히 보았다. 아니, 그는 포로수용소에 오기 전에 이미 이것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인민군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는 자신이 인민군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경찰이 자신을 붙잡았을 때는 인민군이 아니라고 외쳐야 했기 때문이다.”(79쪽)

반공포로의 신분이었던 2년 동안 김수영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김수영을 4·19 정신의 시인으로 평가하는 입장에도 반기를 든다. “이제는 김수영이 4·19 혁명의 낭만적인 자유정신에 취했던 시인이라고 오해하지 말자. 그의 자유정신은 관념 혹은 상상 속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거제도 포로수용소, 즉 피와 땀과 굴욕의 현장에서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다.”(87쪽)

김수영의 진정한 트라우마로 아내 김현경을 지목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김수영은 김현경이 자신의 친구와 부산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가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1954년 김현경이 서울의 김수영을 찾아와 살림을 재개했을 때 김수영에게는 이미 여자가 있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간호사 출신의 노봉실이라는 여자였다. 기혼녀인 그녀는 당시 미도파백화점 옷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수영은 1955년 서울 구수동에서 차남 우(瑀)를 낳았지만 김현경과의 사이가 좋아진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이 죽음 직전까지 아내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던 것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온전히 해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본래성과 비본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타인을 본래성으로 본다는 것은 그를 ‘존재’와 ‘무’의 층위에서 보는 것, 구체적으로 말해 존재하는 무엇이든지 언젠가 ‘무’의 차원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 숙명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99쪽) 김수영은 “자신을 옥죄는 일체의 것에 저항했던 인문주의자”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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