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⑫ 무의식에서 발원하는 음악적 非文… 시인 조연호
언어실험실에 스스로 자신을 가둔채 무의식을 바탕으로 모국어·秘儀 탐험
“왼발을 저는 미나, 미나는 지금 페리호를 타고 3시간 남짓 떠나는 물 위의 어떤 여행. 미나의 허무한 이름들은 늦여름까지 계속 산등성이를 뒤덮는다. 백사장 끝에 서서 미나가 구토한다. 깨진 창문은 아름다웠는데, 방 안에 꾹꾹 찍힌 구두 발자국들은 아름다웠는데, 방문을 열면 죽은 미나가 흉한 냄새로 사람을 반기곤 했다. 아무도 네 어린 딸이 울고 있다고 미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왼발을 저는 미나’ 전문)
조연호(43) 시인의 초기 시이다. 왼발을 저는 미나를 찾아 떠도는 남편의 목소리가 산등성이를 뒤덮는다는 이 비극적인 사랑엔 환상적 요소가 가득하다. 그가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평했다. “조연호의 시는 환상과 언어를 긴밀히 엮어냄으로써, 환상에 삶으로서의 깊이와 무게를 얹어주고 있다. 살아서, 삶 속에서 유효하게 가동되는 환상의 모습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더 이상 환상의 영역에만 머무는 아름다움이 아닐 것이다.”
조연호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부천시청 공보실에서 10년가량 근무하다가 직장을 접고 전업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수천 장에 이르는 음반 수집가이자 클래식 애호가이기도 한 그의 시는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이런 평가에 대해 그는 이렇게 항변한다. “불확정적인 세계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대시는 음악이나 그림을 감상하듯 뉘앙스를 읽어내면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이나 그림을 감상할 때 의미를 분석하지는 않잖아요. 뉘앙스가 쌓인 뒤에 남는 것이 ‘의미’인 것이지, 정답은 없어요. 단지 관점만 있을 뿐이죠.”
그는 음악 감상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라는 극히 단조로운 작업으로 하루를 보낸다. 스피노자, 니체는 물론 기독교 서적, 물리학, 음악 등을 두루 섭렵하는 인문철학서의 열독자로서의 독서 체험은 상당 부분 시작(詩作)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그는 빨강과 파랑이라는 두 가지 색의 문장이 충돌해 빚어지는 보랏빛 유사색들의 새로운 뉘앙스를 창출해가고 있다. 이런 단조로운 일상과 늘 꽁지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그에게서는 고전주의자나 수도승이 연상되기도 한다.
“여름밤은 납작했다/ 아내는 화재로 타버렸기 때문에/ 사슴이 울었다 가끔 큰 소리를 내며 항문으로 기체를 뿜던 그들이/ 숲마다 얇은 실의 천적을 걸어놓고 자기 귀를 부흥하고 있었다/ 최근(最近)이 없는 사람을 따라 거미가 가라앉은 가족묘 언덕길을 오른다/ 그래, 최근에 없어진다, 발음기(發音器) 안쪽에 잘 접힌 내가/ 자기 노래의 짐승됨에 잘 마른 풀밭을 얹어주었다/ 아내의 여름밤에 남김없이 물이 부어졌기 때문에/ ‘네가 옳을 경우에만 대답은 고통을 갖고 있다’는 구령(口令)이 들려왔다”(‘행려시’ 부분)
2011년 현대시학상 작품상 수상작인 ‘행려시(行旅屍)’는 일정한 거처 없이 객지로 떠돌아다니다가 외롭게 죽은 사람의 주검을 지칭한다. 조연호는 주검을 염습하는 염장이의 입장에서 무의식을 바탕으로 모국어를 해체했다가 재조립하는 언어실험을 보여준다. 구문과 문맥은 국어의 일상적 관점으로는 도저히 종잡기 어렵다.
“‘네가 옳을 경우에만 대답은 고통을 갖고 있다’는 구령(口令)이 들려왔다”에서 구령은 ‘입으로 행하는 명령’이므로 앞의 문장인 ‘대답은 고통을 갖고 있다’와 어울리지 않는다. 의미는 고사하고 낱말들의 기표 자체마저 온전히 휘발해 버린다. 어떤 분위기만 남는다. 이런 비일상적 혹은 일탈적 언어 현상은 최근작에서 빈번히 반복된다. 그는 언어실험실에 자신을 가둔 채 모국어와 시의 비의(秘儀)를 탐험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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