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반상회가 있었더라면

Է:2012-04-2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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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손수호] 반상회가 있었더라면

4년 만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르면서 나라가 들썩였다. 희비가 엇갈리고 온갖 정치담론이 쏟아졌다. 그렇게 요란을 떠는 동안에도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지난 1일 발생한 수원 살인사건의 희생자다.

이 사건의 후유증이 오래 가는 것은 치안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밤길을 걷다가 위기에 처한 아가씨의 애타는 구조요청을 듣고도 손쓰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긴급전화와 연결됐는데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숨져간 희생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물론 가장 원망스러운 사람은 살인마 오원춘이다. 자신의 욕정을 이기지 못해 무고한 여성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기회의 땅’ 한국에서 성공하는 조선족이 숱한데도 시궁창 같은 삶을 살다가 패악을 저지른 그에게 법은 가장 엄격해야 한다.

앞집도 모르고 사는 세태

경찰의 대응도 용서할 수 없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에게 “여보세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라고 묻던 바보 경찰은 위치추적권이 없어 그랬다는 식으로 초점을 흐리고 있다. 과연 시스템 탓일까. 나는 지금 112가 당시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국민의 생명은 지킬 존재가 아니라 번거로운 대상으로 여기니까.

수원 사건은 이웃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당시 길에는 행인들이 있었고, 피해 여성이 질질 끌려가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폭행에 대한 저항과 부부싸움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무신경했던 것이다.

경찰과 이웃들이 내세운 건 프라이버시였다. 경찰은 현장 주변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작전을 펼까 하다가 주민들의 안면권 침해를 우려해 포기했다고 한다. 핑계일 뿐이다. 목하 범죄가 진행 중인데 사생활 보호가 그리 중요할까. 두 가치는 대립되지도 충돌하지도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사생활과 공생활은 적절한 균형을 갖춰야 한다. 우리 전통적 삶의 형태가 그랬다. 지금도 시골에 가서 담장을 보면 적절한 높이를 하고 있다. 골목길을 그냥 걸을 때는 남의 집 내부가 보이지 않지만, 작심하고 고개를 빼들면 마당이 보인다. 집이 마을의 일부라는 사실, 프라이버시와 개방의 중간 형태를 취했다. 그게 마을의 지혜이자 집단지성이었다.

도시에서도 그런 시도가 있긴 했다. 바로 반상회다. 1976년에 생긴 반상회는 집집이 돌아가며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했다. 당시 정부가 유신체제를 선전하는 장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반감을 산 데다 반복되는 모임을 귀찮게 여기면서 사라졌지만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

다과를 준비하는 게 번거롭기는 해도 이웃들이 한자리에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동체의 미덕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자녀가 결혼하고, 어른이 별세하는 뉴스를 공유했다. 만약 수원에서 반상회가 활성화돼 이웃 간에 얼굴을 익혔더라면 참혹한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나.

소공동체 문화 복원해야

반상회를 다시 만들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들이 거울만 쳐다보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정부가 반상회를 주민 통제가 아닌 소통의 기회로 보고 인센티브 방식으로 지원한다면 복원이 어렵지 않다. 도시의 소공동체가 인간다움으로 넘쳐야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

종교단체의 활동도 지역을 거점으로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웃이 붕괴된 도시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곳은 교회다. 출석교회를 존중하되 활동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자는 것이다. 봉사도, 이웃사랑도 지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복음적 삶에 부합한다고 본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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