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우상 제국의 시대, 하나님 나라 회복하려면… 탐욕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짊어져야

Է:2012-04-2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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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출판] 우상 제국의 시대, 하나님 나라 회복하려면… 탐욕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짊어져야

제국과 천국-세상을 뒤집은 골로새서 다시 읽기/브라이언 왈쉬·실비아 키이즈마트 지음, 홍병룡 옮김/IVP

인상적인 한 권의 책을 형지㈜의 김원수 사장과 건국대 중문과 장영백 교수 등과 함께 읽고 독서토론을 했다. 한국어판 제목은 ‘제국과 천국’이고 원제는 ‘리믹스된 골로새서’(Colossians Remixed)이다. 골로새서를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해서 다시 해석했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1600년 전에 교부 어거스틴이 쓴 ‘신국론’을 떠올리게 한다.

어거스틴은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의 나라’(civitas Dei)와 ‘땅의 나라’(terrena civitas)의 대립관계로 보았다. 두 나라는 세상 끝 날까지 역사 속에서 공존하지만 그 운영원리는 명백히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를 멸시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amor Dei)으로 움직이지만, 땅의 나라는 하나님을 멸시하기까지 자기를 사랑하는 인간의 자기애(amor sui)로 건설된다. 이 두 나라는 서로 배타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든, 이 땅의 나라든 둘 중의 하나이지 제 삼의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심판 때에야 두 나라는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쓴 왈쉬와 키이즈마트의 생각도 어거스틴의 통찰과 일치한다. 그래서 그런지 IVP가 붙인 ‘제국과 천국’이란 제목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왈쉬와 키이즈마트도 골로새서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를 나눈다. 하나님 나라,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다. 골 1:16 말씀대로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고 예수님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나라다. 이 나라의 국민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골 3:10) 신자들이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통치되기에 평화와 겸손과 섬김이 넘친다. 반면에 땅의 나라 제국(the empire)은 그리스도에 속하지 않는 정치적ㆍ사회경제적ㆍ군사적ㆍ생태학적 삶의 총체다.

제국은 무한한 진보와 확장의 신화로 무장하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들기에 전체주의적이다. 이 제국은 1세기의 로마일수도 있고 20세기의 초강대국 소련이나 미국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현실이거나 최근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던 세계관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두 나라의 존재방식은 처음부터 대립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두 나라를 모두 만족시키려는 크리스천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왈쉬와 키이즈마트는 이 책의 성경해석법을 ‘탈굼적’이라고 부른다. 탈굼(Targum)이란 주후 1∼3세기에 팔레스타인과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본문 사이사이에 자세한 해설을 덧붙인 구약성경이다. 그들은 탈굼의 전통을 되살려서 골로새서에 대한 매우 시사적이고 구체적인 주석을 시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리스도가 진정 만물의 창조주요 구속자라면 그처럼 놀랍도록 포괄적인 세계관이 우리의 생태학적 정치적 경제적 삶과 관련해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13쪽)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이 골로새서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이다. 당시의 제국은 로마제국이었다. 로마는 군사력과 기술을 통해 세계를 정복했고 황제를 평화와 번영의 수호자요 신(Deus)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로마의 번영의 그늘에는 파괴된 도시와 노예가 된 주민들과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소작농들의 신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제국의 한가운데서 골로새 교회는 새로운 세계관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서로를 돌보며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병자들이 치유되기도 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남자와 여자가, 자유인과 노예가 함께 예배하며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복수하지 않고 용서를 베풀었다. 이 예수의 공동체 안에서는 로마제국의 분위기와는 다른 사랑과 희망이 넘쳐났다.

이 책의 후반에 가면 더 현실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세계화된 경제와 사이버네틱 혁명이 결정적으로 입증하듯이, 정보테크놀로지를 등에 업은 경제적 결정론이 세계의 주권자 노릇을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예수를 우주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에 걸맞게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164쪽) 본래 개혁주의에서는 교회와 신자들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오늘의 제국은 군사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기술지상주의, 경제주의 같은 우상들을 통해 모든 사람, 심지어 교회까지도 지배하려 한다. 이 제국의 퍼사드(facade)는 부와 권력과 명성과 섹스, 신나는 오락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뒷골목에는 ‘서로를 잡아먹고 약탈하는 문화’에 의해 살해당하고 훼손된 시체로 가득하다.

저자들은 교회가 제국의 지배 한 가운데에서 천국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교회가 제국의 탐욕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데 달려있다고 말한다. 비록 성경은 물질과 부 자체를 악마로 보지 않지만, 그것을 최고로 숭배하는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죄로 규정한다.

이 책에 대해 기업인인 김원수 사장은 “교회 안에서 우리들끼리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울타리에 갖혀 맴돌던 사이에 제국은 교회마저도 휩쓸어 버렸다.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을 천국적인 서번트의 가치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인문학자인 장영백 교수는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잘 살게 되었지만, 소비주의적 ‘제국’ 문화에서 벗어나는 길은 약한 자들의 소리와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고 나누며, 용서에 근거한 포용을 베풀고, 인간의 유한성과 오류를 인정하는 겸손을 지녀야 한다. 또한 예수 이야기로 형성된 타자지향적이고 역동적인 사랑과 평화와 치유의 공동체적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다가오는 그 나라’를 지금 살아내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최태연 교수(백석대 기독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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