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비례대표제 애물단지 될라
지난 11일 총선에서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당혹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긴 용지에 20개 정당명이 빼곡하게 인쇄돼 있는데다 이름만 봐서는 언뜻 구분이 가지 않는 정당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당인이나 지지 정당이 확고한 유권자야 논외겠지만,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선택하기 쉬운 지역구 후보를 정한 뒤 정당 기표에 한참을 망설였을 것이다. 낯선 정당을 찍으려니 정체를 모르겠는데다 사표가 될 듯하고, 이름 있는 정당을 택하려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터이다. 지역구 후보와 같은 정당을 찍을지, 아니면 역투표로 균형을 도모하는 게 옳을 지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 막론하고 이런저런 물의를 빚은 후보들이 전례 없이 많아 공천 책임을 생각한다면 정당 투표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의석비-득표율 불일치 여전
선거가 끝난 뒤에도 당선자 자질 논쟁이 계속되고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후보 선정과 관련한 잡음까지 일어 유권자들은 다시 한번 실망했을 것이다. 비례대표 당선자 가운데 북한 추종 전력자가 다수 포함돼 있다거나 이들을 앞 순번에 넣기 위해 투표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니 깜짝 놀랄 일이 아니었겠는가. 국회 분위기 일신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지지했는데, 민주 체제의 기본인 절차의 정당성조차 지키지 않은 게 사실로 확인된다면 투표를 철회하고 싶은 유권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당초 지역구에서 1위를 하지 못한 후보들을 지지한 표의 사표화를 방지하고, 군소정당의 원내진출로를 넓히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를 뜯어보면 새누리당은 지역구 127석과 비례대표 25석을 당선시켜 전체의석 300석의 50.7%를 차지했으나 전국의 지역구 득표 합계는 43.3%에 그쳤다. 민주당이 획득한 지역구 106석과 비례대표 21석 등 127석은 전체 의석의 42.3%에 해당하지만 전국 득표율은 37.9%였다. 두 당은 각각 7.4%, 4.4% 포인트에 해당하는 의석을 더 얻은 셈이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지역구에서 6.0%를 득표했지만 의석비율은 4.3%, 자유선진당은 지역구 2.2% 득표에 의석비율은 1.7%로 손해를 봤고 다른 군소정당은 한 곳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완벽한 제도는 없겠지만 메이저 정당에 유리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2장의 총선 투표용지를 앞에 놓은 투표자들의 고민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전국구 배분을 지역구 후보들의 총득표수에 따라 했으나 2001년 헌법재판소가 지지 정당과 후보자가 엇갈리는 유권자의 선택권 절반을 빼앗는 것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 직전인 2000년과 직후인 2004년 총선 결과를 보면 당선자 수와 득표수의 비례관계 불일치나 메이저 정당에 유리한 현상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실 공천, 후보검증도 취약
더 큰 문제는 공천 과정에서 중앙당의 정실이 개입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을 거의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과거에는 ‘공천 장사’가 횡행했다. 통합진보당의 이번 경우는 당권파들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투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권자들이 무관심하다보니 후보에 대한 검증이 각 정당에 맡겨져 가볍게 처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비례대표 후보 개개인을 상대로 한 투표를 허용하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유권자의 혼란이나 선거관리의 복잡성 때문에 도입하기 난망이다. 이대로 가다간 비례대표제는 애물단지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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