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이치 속에서 존재 의욕 ‘깨단하는’ 秘記… ‘봄날은 간다’

Է:2012-04-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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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이치 속에서 존재 의욕 ‘깨단하는’ 秘記…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김영민/글항아리

한신대 철학과 김영민 교수만큼 봄을 타는 남자도 드물 것이다. 부제를 ‘공제(控除)의 비망록’으로 한 연유가 이를 말해준다.

“이 책은 내 한 사람이 세속을 빠듯하게 혹은 느긋하게 지나면서 그 봄날이 가는 일을 비망록처럼 적어놓은 것입니다. 봄날을 빼앗기는 공제(控除) 속에서 존재가 익어가는 소리를 그때그때 적바림한 것이지요. 익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 그러나 익어도 죽는다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라는 짧은 봄날의 이치이지요.”(‘서문’에서)

그러면서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내지 못하던 일 따위를 어떠한 실마리로 말미암아 깨닫거나 분명히 알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깨단하다’라는 동사를 끄집어낸다.

에세이집은 전체적으로 ‘깨단하다’라는 동사와 맞물린다. 무엇을 깨단한다는 걸까. 그건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고 있는 ‘어긋남’을 간파하는 일과 연결된다. ‘망해야 산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가끔 가던 콩나물국밥집이 망해버린 사실을 알고 이렇게 자문한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이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것처럼 보이는 식당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114쪽)

‘망한 식당’에서 맛없음과 맛있음이라는 식상한 연유를 떨어내고 자신이 애정을 가진 대상의 사라짐을 소상히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치와 라면 혹은 사회적 평등자’에서는 이렇게 짚는다.

“내 동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면발의 템포를 곁눈으로 보면서 느끼는 그 쓸쓸한 연대, 그 이름 붙일 수 없는 연대는 라면의 기원과 풍경을 삽시간에 통일한다. 라면의 풍경은 그 풍경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면발의 자유와 국물의 평등, 그리고 김치의 박애를 거의 필연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131쪽)

‘행복, 행운이 아닌’에서는 “매스미디어가 행운을 얻은 자를 대서특필함으로써 행복의 이미지를 왜곡시킨다”며 이렇게 강변한다. “한때 행운은 영웅들의 것이었다. 종종 그것은 비상한 역정(力征)과 위업에 걸맞는 선물로서, 신들이 점지한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나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심청이나 콩쥐처럼 그 행운은 천지간의 이법(理法)에 부합하는 성질의 것이어야 했다. (중략) 행운이 신화의 아우라를 벗고 지질한 서민들의 백일몽이 된 세속을 일러 ‘자본주의’라고 부른다.”(166쪽)

150여 편의 에세이들은 짧기만 한 봄날의 이치 속에서 존재의 의욕을 깊이 깨단하는 일종의 비기(秘記)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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