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말복] 봄의 제전

Է:2012-04-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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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김말복] 봄의 제전

“춤은 생의 활기를 전하는 촉매… ‘鼓舞盡神’의 민족답게 국가적 축제 하나쯤 있어야”

봄이 오면 어김없이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돋아나고 메말랐던 가지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면 대지의 생명력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이런 느낌 때문에 기원전부터 선조들은 생의 활력이 넘치는 봄에 자손의 번영과 풍요를 비는 축제를 열었나 보다. 생의 활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약동하는 기운으로 사람을 재충전해주는 데 춤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봄의 제전은 춤으로 시작하여 춤으로 끝나는 무용축제였다.

그리스는 미케네문명시대부터 매년 봄 3월 말에 디오니소스 축제를 열었는데 그 규모와 열기가 대단했다. 그리스시민들은 번식력의 신이자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일상의 근심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을 지닌다고 믿어 제단을 둥글게 돌며 그의 생애를 동작과 춤으로 재현하였다. 춤이 주된 활동이 되는 이런 장대하고 스펙터클한 봄의 축제는 단순히 풍요제에 그치지 않고 도시국가 그리스를 통합하는 부수적 기능을 지녔다.

당시 아테네 시민을 구성하던 10개 부족들은 매년 각기 50명의 성인 남성과 50명의 소년으로 구성된 부족 대표팀을 보내 디오니소스축제에서 제의 춤 경연을 벌였다. 경연에서의 승리는 대단한 영예였고 공공장소에 기념비를 세울 정도였다. 봄의 제전 춤 경연대회는 도시국가의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며 갈등을 해소하고 조화와 공생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1913년 니진스키가 러시아의 원시 번식 제의를 소재로 만든 ‘봄의 제전’은 20세기 현대발레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은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1부 대지에 대한 숭배, 2부 봄의 신의 자비를 바라며 바치는 희생제물 봉헌의식 등 2부로 구성된다. 여기서 아름다운 처녀가 제물로 뽑히는 것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새싹과 같은 생명력을 지닌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원시인들은 모방 주술적 믿음에서 자신이 바라는 것과 가장 유사한 제물을 바치며 자신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흥행수표는 생명과 죽음, 그리고 사회적 공의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약자에 대한 집단 폭력이다. 봄의 축제전통이 사라진 요즘 나른한 봄날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강렬한 음색, 복잡한 폴리리듬과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음악에 맞추어 무용수들이 온몸을 흔들어대며 대지를 두드리는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재생할 기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군시대서부터 고려조까지 봄 가을 농사절기에 맞추어 국가적인 축제의 전통이 활발했다. ‘삼국지’에 한국인이 북치고 춤추며 몰아의 경지에 들기를 잘하는 ‘고무진신(鼓舞盡神)의 민족’이라는 기록은 봄에 대지와 농사의 신에게 드리는 제의적 춤의 모습을 지칭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국가적인 축제의 전통이 사라졌지만 한국인은 매년 초 마을에서 겨우내 억압되었던 생명력을 해방시키고 공동체의식을 다지고 마을 전체의 행복을 위해 신명나는 춤판을 벌였다.

이런 무용축제의 전통이 잘 살아있는 브라질은 극심한 빈부 차에도 불구하고 일 년 내내 삼바 춤을 준비하고 2월말에 시작하는 일주일간의 삼바축제 카니발에서 마음껏 춤추며 살아있는 감각적 즐거움과 에너지를 발산하며 높은 행복지수를 누린다.

지난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대∼한민국’ 박수로 하나가 되어 응원하던 광화문과 시청앞 광장의 모습을 보며 무용축제의 전통을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 춤은 집단적이고 제의적이며 축제적인 성격, 신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화를 도모하는 기능을 지녔다. 공동의 리듬을 타는 몸짓으로 뒤섞여 난장을 이룬 상태에서 하나 됨을 확인하는 훌륭한 소통 수단이다.

오늘날 사회적 갈등으로 극심한 대치상태로 쓸려가는 우리 사회에 상호확인과 하나 되는 공생과 조화, 그리고 우리 모두의 행복지수를 상승시켜주는 무용축제의 전통을 되살리자. 고무진신의 민족이 국가적인 봄 축제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김말복 이화여대 교수 무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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