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진달래 추억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진달래)
4월의 진달래는 볼 때마다 눈이 부시다. 야릇한 연분홍 꽃 색깔 너머의 기억들 때문일까? 긴 겨울 매서웠던 혹한을 뚫고 피어나는 그 강인한 생명력의 색깔이 저토록 여린 연분홍색이어서 일까? 아니면 유난히도 아픈 기억들이 많았던 한반도 4월 하늘이 남긴 무거운 역사의 무게 때문일까? 긴 겨울의 동토를 뚫고 나온 4월의 진달래는 눈이 부시다.
가슴의 언어, “어머니”를 표현하는 색깔이 있다면 나에겐 연분홍 진달래 꽃 색깔이다. 유난히 연분홍 빛 한복을 즐겨 입으셨던 이영애님. 배우 이영애가 아니고 우리 엄마 본명이시다. 이영애로 태어나서 서정원 권사로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일찍이 이혼의 아픔을 겪고 그 당시에는 당연히 빼앗겨야만 되는 큰아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호적상의 이름을 이영애에서 서정원으로 바꾸고 과감하게 시골집을 탈출하여 대도시의 생존경쟁에 뛰어 들었던 내 어머니. 그토록 지키고 싶던 큰아들을 시골 친정집에 맡겨놓고 일 년에 딱 두 번, 명절 때만 찾아오실 때 우리 엄마는 꼭 연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외가 집 골목 어귀에 나타나셨다. 유난히도 분홍색을 사랑하셨던 어머니는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시면 구슬픈 목소리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 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를 참으로 구성지게 불렀다. 우리 이영애님은 지금 내 감수성의 원천이며 타는 목마름의 영원한 대상이다.
그 어머니를 8년 전, 그분이 평생을 바쳐 올곧게 사랑하셨던 예수 총각의 발밑에 묻고 돌아서 올 때, 청개구리 같은 나는 가슴으로 “봄날은 간다”를 몇 번이나 되새기며 울었다. 영원히 내 옆에 계실 것 같아 미뤄뒀던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서글픈 노랫말에 담아 부르고 또 부르며 이영애님, 서정원님, 두 분 같던 한 분 어머니를 내 마음에 묻었다.
어머님의 소천과 함께 철부지 같던 내 인생의 봄날은 그렇게 가고, 슬픈 듯이 빠르게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를 산골하며 예수님의 발밑에서 맹세했던 그 다부진 청개구리의 맹세도 기억 저편으로 아릇아릇해 질 무렵 나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작년 겨울 병상에 누워 길고 지루한 겨울을 지냈었다.
도무지 오지 않을 것 만 같던 봄날이 다시 와 저기 연분홍빛 찬란한 진달래 무리로 눈부시게 서있다. 티베트인들은 봄날에 피는 모든 꽃들은 한때 우리들의 어머니였다고 믿는다 한다. 어머니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어머니를 보내며 다짐했던 알뜰한 그 맹세를 더듬으며, 진달래 꽃 피어나기 시작하는 파주 심학산 둘레길을 지난 주말 걸었다. ‘기억(re-member)’은 ‘돌봄’의 시작이라 했던가? 이 봄날, 심학산 둘레길을 걷는 내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다시 살아 여전히 나를 돌본다. 인생길의 한 중간에서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는 나에게 말한다.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 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 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김규동, 꿈에 네가 왔더라).
꼭 우리 어머니 품같이 아늑하고 푸근한 심학산 둘레길이 다 끝나갈 때 다시금 다짐하는 말. 나도 언젠가 어머니 곁에 누울 때 분명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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