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인문학] 복장 논쟁의 불을 지핀 영국 청교도의 아버지 존 후퍼 (下)
협박·회유에도 후퍼-로저스 “화형도 하나님 은혜” 흔들리지 않아
복장 논쟁은 존 후퍼가 임직 시 딱 한 번 복장을 착용하고, 그 후에는 입지 않는 것으로 일단 타협을 보았다. 종교개혁 진영의 분열을 원치 않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복장 논쟁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피의 메리 여왕 시절 박해를 피해 대륙으로 피난한 개혁자들 중 성경만을 주장하며, 성경 이외의 요소를 일절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청교도’라고 불리는 그들은 영국 교회에서 모든 비성경적인 요소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한 비성경적인 요소 중의 하나가 목회자의 복장 착용이었다.
청교도들은 1563년에 복장 문제를 비롯한 교회 개혁안을 영국 교회의 최고 입법기관인 캔터베리 성직자회에 제출해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나 단 한 표차로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이에 주눅 들지 않았다. 계속해서 영국 국교회가 정한 복장착용 거부 운동을 전개했다. 아울러 성호를 긋는 것, 무릎을 꿇는 것 등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없애려 했다. 이런 점에서 복장 논쟁을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후퍼를 청교도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주교 임직 시 복장을 착용한 점을 들어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논란 끝에 후퍼는 1551년 3월 8일 글로스터의 주교직을 맡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성경 지식의 보급이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교구를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 성직자들이 성경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십계명을 말할 수 있는 성직자들이 반도 되지 않았다. 몇몇은 아예 영어로 주기도문을 외우지도 못했다.
그는 성직자들의 성경 교육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신도들에게 성경 중심의 삶을 살 것을 설교했다. 열정적인 설교는 신도들을 매번 감동시켰다. 그는 자신이 설교했던 성경적 삶을 실천하고자 했다. 사랑과 은혜로 사람들을 대했고, 항상 가난한 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1년이 안되어 그는 주교에서 부교구장으로 강등되었고, 우스터의 주교 일도 함께 맡게 되었다.
후퍼도 영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레이디 제인을 내세워 메리 여왕을 몰아내려 했던 섭정 노섬벌랜드의 음모에 그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섬벌랜드의 음모는 성공하지 못했다. 메리 여왕은 즉위하자마자 종교개혁가와 개신교도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잔인하고도 가혹한 처형이 잇따랐다. 후퍼는 성 세펄커 주교 대리 존 로저스 등과 더불어 첫 번째 박해 대상이 되었다. 그가 노섬벌랜드의 음모에 반대한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왕은 1553년에 자신의 빚을 갚지 않았다는 죄로 그를 18개월간 플리트 감옥에 감금시켰다. 그를 상대로 믿음을 철회시키기 위한 집요한 심문이 계속되었다. 1555년 1월 28일에 존 로저스와 함께 세 번째 심문을 받으며 믿음을 철회하라는 협박과 회유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화형을 앞두고 서로를 위로했다. 로저스가 “화형도 하나님의 은혜”라며 후퍼를 위로했다. 로저스는 1555년 2월 4일 런던에서 화형을 당해 피의 메리 시절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 후퍼의 화형식은 5일 후인 2월 9일로 결정되었다.
여왕은 잔인했다. 후퍼의 친구인 안토니 킹스턴에게 화형식에 참석하라는 서신을 보내 친구의 최후를 지켜보라고 명령했다. 킹스턴은 감옥에 있는 후퍼를 찾아갔다. 친구를 보자마자 그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친구의 죽음이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제발 목숨만 부지하라고 친구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후퍼는 침착하게 킹스턴을 오히려 위로했다. “실제로 죽음은 쓰고 삶이 달콤하네. 그러나 장차 임할 죽음은 더욱 쓰고, 장차 얻을 생명은 더욱 달콤하다는 것을 생각하게나.”
후퍼의 처형 날이 밝았다. 감옥으로 찾아온 시장은 그에게 존경을 표하며 그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일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시장에게 불이 빨리 타오르게 해서 고통을 빨리 끝내달라고 부탁했다.
후퍼가 화형식장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눈물만 흘려야 했다. 여왕이 말을 걸거나 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엄한 명령을 했기 때문이었다.
여왕은 후퍼를 끝까지 시험했다. 여왕은 화형식장으로 친서를 상자에 넣어 보냈다. 후퍼가 만일 마음을 바꾼다면 용서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후퍼는 그 친서를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당신들이 나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당장 치우시오!”
마지막 회유책도 소용없게 되자 화형식이 서둘러 거행되었다. 말 두 필이 나를 수 있는 정도의 생나뭇단과 불을 붙이기 위한 갈대들이 준비되었다. 갈대에 불을 붙였지만, 불이 생나무로 제대로 옮겨 붙지 못했다. 추운 겨울에다 제법 거센 바람마저 불어 불길이 후퍼를 태우지 못하고 핥기만 했다. 갈대가 떨어지자 급히 마른 나뭇단을 구해와 두 번째로 불을 붙였다.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그의 하체만 태울 정도로 약했다. 하체는 까맣게 그을렸지만 나뭇단들이 너무 적어 상체를 제대로 태우지 못했다. 후퍼는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선한 사람들이여,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내게 더 강한 불길을 가져다주시오!”
세 번의 시도 끝에 불길이 제대로 타올랐다. 아주 서투른 화형식이었다. 불길 속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최후의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한 후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그러나 불길이 그의 입도 막아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두 팔로 가슴을 쳤다. 그러나 불길에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손가락 끝에서는 피와 물과 기름이 뒤엉켜 뚝뚝 떨어졌다. 그는 남은 한쪽 팔로 계속 가슴을 두드렸다. 그렇게 두들기던 팔도 거센 불길에 그의 가슴을 묶은 쇠사슬에 달라 불어 버렸다. 곧이어 그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지고, 그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후퍼는 가슴을 두드리며 최후까지 무슨 말을 전하려 한 것일까? 혹 처형 당하기 3주 전에 쓴 편지에서 그가 했던 말은 아닐까?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심판의 때가 됐습니다. 군주와 세계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동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분을 증오하는 이제, 누가 그분의 진정한 신도인지 가리는 진정한 심판의 때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덕, 힘 그리고 권세의 이름으로 어떻게 해서든 역경을 이기고 지조를 지키십시오. 싸워야 할 최고의 순간에 결코 우리 도망가지 맙시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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