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협상의 달인, 북한
통상 북한을 ‘협상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핵과 미사일을 위협수단으로 삼아 전 세계를 상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챙겨왔으니 말이다.
1989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뒤 20여년간 북핵 협상이 지속돼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야욕은 꺾이지 않았다. 도리어 지루하게 밀고 당기는 협상을 적절히 활용해 북한은 핵개발 의혹국에서 핵 보유국으로 위치이동을 하고 있다. 플루토늄탄뿐 아니라 우라늄탄 제조까지 가능한 완벽한 핵 보유국으로서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그간 북한에게는 협상이란 ‘상호 양보와 약속 준수를 통해 서로 충돌하는 의견과 이익을 조정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척 다운스 사무총장은 “북한처럼 협상을 외교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낯익은 협상전술을 수없이 반복하고, 자신의 근본적인 협상목표를 지독하리만큼 끈질기게 추구하는 국가는 일찍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운스 총장이 말하는 낯익은 협상전술이란 ‘살라미 전술’과 ‘벼랑끝 외교’이다. 이 전술의 역사는 깊다. 6·25전쟁 휴전회담 때 유엔 수석대표로 북한과 협상을 벌였던 터너 조이 미 해군제독은 북한의 ‘살라미 전술’과 ‘벼랑끝 외교’에 진저리가 난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살라미 전술은 살라미 소시지를 먹기 좋게 잘게 자르는 식으로 협상을 끌어가는 전술로 모든 사안을 잘게 나누어 하나하나 합의할 때마다 많은 보상을 챙기는 행태를 말한다. 벼랑끝 외교란 적당한 핑계만 나오면 그간의 합의를 몽땅 무효화하고 벼랑끝으로 밀어내는 위기를 조성해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북한은 체포된 포로수를 속이고 미군이 세균전을 자행했다고 억지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도록 압박했다. 그러다 포로 강제송환 불원칙과 송환의사 심사절차를 도입키로 합의해놓고는 심사결과가 밝혀지자 합의사항을 무효화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협상을 시작하도록 했다. 2년간 지루하게 포로협상을 지연시키면서 북한은 다른 쪽에서 유엔 양보를 얻어냈다.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협상에서도 이런 행태는 고스란히 반복됐다. 1차 북핵협상으로 1994년 맺어진 제네바합의를 미 뉴욕타임스는 그해 10월 23일자에서 김정일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평양은 핵시설 동결 약속만으로 3개 원자로 동결로 상실되는 총 발전량 255㎿의 8배가 되는 2000㎿의 경수로 건설은 물론 대북 제재조치 일부 완화 등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다 받아냈다는 것이다.
제네바 합의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 문제가 불거지자 흔적도 없이 붕괴됐다. 그로 인해 북한이 상실한 것은 거의 없다. 동결됐던 핵시설은 재가동되고, 수조에 보관됐던 연료봉은 재처리돼 핵무기 3∼4개 분량인 약 25㎏의 플루토늄도 생산했다. 그간 부단히 개발해온 대포동 2호 미사일의 시험발사도 했다.
2차 북핵협상이 2003년 6자회담의 형태로 시작됐지만 북한 핵프로그램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6자회담의 유용성이 살아있기는 하다. 그러나 “6자회담도 북한의 핵실험 시간벌기요 식량과 에너지를 얻어내는 사기 수단”이라고 혹평한 중국 중앙당교 장렌구이 교수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26, 27일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이 북핵문제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헛된 기대이겠지만 북한이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의 협상의 달인이 되길 소망해본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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