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순만] 청춘극장
요즘은 전철에 오르면 노약자석으로 자주 간다. 노약자석이 텅 빌 때는 몰라도 보통은 좌석에 앉지 않는다. 아직은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지공거사’가 아니니까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 그래도 노약자 석으로 가는 것은 재미있는 시니어들을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들이 청춘극장을 연출하는 사이에 일반석 주니어들은 졸거나 스마트폰에 빠져서 아무런 표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한 시니어가 서울 가양동에서 팔당댐까지 왕복 100㎞가 넘는 거리를 주말에 자전거 라이딩을 했다고 자랑했다. 스키니진을 입고 은근히 젊은이의 체형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연세를 물어보았다. ‘방년 73세’란다. ‘허걱!’이다. 방년(芳年)이면 꽃피는 나이가 아니던가.
엊그제는 두툼한 책을 읽고 있는 시니어를 만났다. 슬쩍 제목을 엿봤더니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였다. 어르신이 이런 소설을 읽는 것은 좀 뜻밖이라고 했더니 정신없이 읽게 된다고 한다. 읽고 있는 곳은 3권의 마지막 부분이다. 1권이 700여 페이지, 2권이 600여 페이지, 3권이 750여 페이지니까 벌써 2000여 페이지를 읽은 것이다.
누군가의 소개로 읽기 시작했는데 조금 읽다보니까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재킷 속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여준다. 일간 신문에 연재되는 일본어 배우기를 스크랩한 것이다. 족히 50장은 돼 보인다. 일본어 공부도 하고 하루키도 읽는 시니어. 76세란다.
지난해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만개했을 때 휠체어에 탄 집안 어른을 모시고 국회의사당 뒤편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음이 환해지는 소풍이었다. 인파 속에서 우연히 아는 휠체어 노인을 만났다. 휠체어를 손수 밀고 동네 체육관에 나와서 힘겹게 트레드밀에 오른 후 아주 느린 속도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등촌동에서 여의도까지 혼자 나왔다고 했다. 계절의 어떤 힘이 불편한 노인을 여기까지 이끈 것일까. 같은 방향이니까 모셔다드리겠다고 했더니 혼자서 갈 수 있다고 사양했다.
올해 벚꽃은 이달 24일 제주도 서귀포를 시작으로 다음달 5일 부산과 경남 진해, 16일쯤에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서 절정을 이룰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해 모셨던 어른은 이제 세상을 떠나셨다. 휠체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노인들의 청춘극장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올해도 휠체어를 밀어드리고 싶다.
임순만 논설실장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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