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척’에서 부활의 기척을 느끼다… 김선우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김선우(42·사진) 시인은 지난 5년 동안 시집 대신 장편소설 두 권을 냈다. ‘나는 춤이다’와 ‘캔들 플라워’가 그것이다. 당시 그는 “당분간 시를 떠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시를 청탁받고 발표하는 관행으로부터 떠나 있는 일”이라며 시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 사이에 그는 마흔을 넘겨 중년이 됐다. 스물여섯에 등단한 김선우가 중년이 되어 낸 네 번째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시체놀이’와 ‘사생어른’이다.

“배롱나무 아래 나무 벤치/ 내 발소리 들었는지/ 딱정벌레 한 마리 죽은 척한다/ (중략)// 어라, 얘좀 봐, 잠깐 죽은 척했던 게 분명한데/ 정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럼 나는 어떡한담?/ (중략)// 나의 부음 후 얼마 지나 새로 돋는 올리브 잎새라든지/ 나팔꽃 오이넝쿨 물새알 산새알 같은 게 껍질을 깰 때/ 내 옆에 있던 기척들이 소곤댈 거라는 걸/ 어라, 얘, 새로 태어나는 척하는 것 좀 봐!”(‘시체놀이’ 부분)

시인의 눈에 딱정벌레는 죽은 척 하는 게 아니라 비록 찰나이지만 진짜 죽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언젠가 내가 죽는 날, 실은 내가 죽은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그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말 죽고 난 다음에도 나팔꽃, 오이넝쿨, 물새알, 산새알 같은 게 새로 태어나는 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선우의 오랜 시적 테마인 에코페미니즘이 읽혀진다.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뛰어넘어 모든 게 공생하는 세계를 꿈꾼다는 의미에서다.

“그림자가 없는 소녀와 소년이 한낮 골목길 언덕에서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애들에게 들릴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인사한다// 미안해… 나도… 사생어른이야…”(‘어른이라는 어떤, 고독’ 부분)

‘사생어른’은 김선우가 만들어낸 조어이다. ‘그림자가 없는 소녀와 소년’이란 우리 사회의 불행한 열외자인 사생아를 뜻하지만 마찬가지로 ‘사생어른’도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가 정당한 혼인관계 없이 낳은 아이 혹은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가리켜 사생아라고 할진대 여기엔 가부장적 중심의 결혼제도가 낳은 모순이 작동하고 있음을 시인은 지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난 아이는 없듯, 이제 시인은 가부장적 그늘이나 그림자 없이 성장해 중년에 이르렀으니 스스로를 사생어른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시체놀이’와 ‘사생어른’이라는 두 방향의 인식을 김선우가 어떻게 키워나갈지 궁금하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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