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현장으로 파고든 ‘탐색의 보고’… ‘소설가의 여행법’

Է:2012-03-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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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현장으로 파고든 ‘탐색의 보고’… ‘소설가의 여행법’

소설가의 여행법/함정임/예담

그녀는 늘 여행 가방을 싸두고 있다. 그녀에게 여행은 단지 물리적인 거리와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 자신이 읽은 소설 속 한 단락의 풍경, 한 자락의 문장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작가와 독자 사이의 가교로 부설한다.

소설가 함정임(48). 그녀의 여행 가방은 미국 뉴욕에 가 있다. 그곳에서 뉴욕을 대표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나는 조용히 죽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브루클린을 추천했고 그래서 바로 이튿날 아침에 나는 그 지역을 한 바퀴 둘러볼 셈으로 웨체스터에서 그곳을 향해 길을 나섰다. 우리 부모는 내가 세 살 때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이사를 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전에 우리가 살던 곳 근처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마치 상처 입은 개가 그러하듯 태어난 본거지로 기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브루클린 풍자극’에서)

그러나 정작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 뇌리에 떠오른 것은 “어느 날에는 삶이 있다”라는 문장이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 ‘고독의 발명’에 나오는 문장이다. 죽음에서 삶으로 여행. 그것을 알려주듯 브루클린 다리는 양안에 걸쳐 놓여 있었다.

그녀의 여행 가방은 이제 프랑스 파리 바렌느 가(街) 77번지로 건너간다. 광장에서 뻗어나간 골목골목으로 발을 옮기는 그녀를 이끄는 것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분신, 말테이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 까닭을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내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여느 때 같으면 멈추었던 곳에 이르러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전에는 몰랐던 내면을 갖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그곳을 향해 간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도 모른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에서) 릴케가 파리에서 내면을 발견했듯 그녀 역시 파리에서 ‘내면의 발견’을 갈구했던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는 그녀의 여행 가방엔 배수아의 소설이 들어 있다. 왜 베를린과 배수아라는 조합이 머릿속에 떠도는지를 그녀는 떠올린다. 때는 1999년 9월, 그녀는 그때도 독일로 떠나는 길이었는데 동갑내기 소설가인 배수아가 당시 병무청 김포공항 분소에서 병역확인 스탬프를 찍어주는 일을 하고 있음을 알고 대뜸 창구로 찾아간다. 문단 모임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지만 개인적인 만남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가는 그녀와 형광등 불빛이 희미한 사무실에 붙박여 있는 배수아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하지만 배수아도 그로부터 3년 뒤 여행 가방을 꾸려 베를린으로 날아간다.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 배수아의 베를린 행이었다. 마치 배수아를 위해 베를린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고, 이제 나는 불온한 여행자, 베를린의 이방인 배수아의 소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66쪽)

그녀의 예언처럼 그녀는 배수아가 베를린에서 쓴 소설을 읽게 된다. “우리가 이바나, 하고 말하는 것은 집시, 라고 불리는 한 마리 개와 그리고 나머지 분석되지 않은 체험을 의미한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났고, 아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것만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저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용하는 이방인이 간다”(배수아의 ‘이바나’에서)

그녀의 다음 여행지는 남프랑스 루르마랭에 있는 알베르 카뮈의 묘이다.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1년 전인 1958년 루르마랭 마을에 집필실을 마련한 카뮈는 2년 뒤인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지만 그의 시신은 파리가 아니라 루르마랭 국도 변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열여덟 살부터 카뮈를 짝사랑해왔다는 그녀가 카뮈의 묘를 찾아가면서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린다.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서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카뮈의 산문 ‘티파사에서의 봄’에서)

그녀는 카뮈의 이 문장으로 인해 자연의 이치와 세상의 겉과 속을 명료하게 볼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공동묘지의 ‘알베르 카뮈’라고 새겨진 돌 위에 손을 얹으며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그리움과 슬픔을 동반한다는 걸 나는 오랜 시간 수많은 글과 수많은 여행지를 통해 깨달았다. 루르마랭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간절한 슬픔을 느꼈다.”(150쪽)

함정임이 지난 20년 동안 꾸린 여행 가방 속엔 로맹 가리와 오르한 파묵과 제임스 조이스가 그들 자신의 작품과 더불어 턱을 괸 채 미지의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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