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1년] “그날 이후 열도는 알 수 없는 의심이 퍼지고 있다”… 지식인 17명, 일본을 말하다
쓰루미 슌스케 外/윤여일 옮김/그린비
지금 일본 열도는 뜨겁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1주년을 맞아 대지진과 원전 사태 이후 일본과 세계를 사유하자는 논쟁으로 달궈지고 있다. 논쟁을 촉발한 것은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생, 사, 자연, 지진 재해, 원자력 발전, 국가,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무엇이 바뀐 것이고 무엇이 바뀌지 않은 것일까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철학자, 사상가, 평론가, 혹은 기존 스펙트럼으로 본다면 좌파, 우파,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로 분류될 이들은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기존 스펙트럼으로 회수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일본 지식인들이 내는 다른 목소리야말로 일본 사회를 하나의 색깔로 바라보는 기존 인식의 패턴에 균열을 내면서, 일본의 진짜 고민은 무엇이며 일본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번역 출간된 ‘사상으로서의 3·11’은 3·11 대지진과 원전 사태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쓰루미 슌스케 등 원로사상가들로부터 젊은 지식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일본 지식인 17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철학자인 사사키 아타루(39)는 ‘부서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이라는 글에서 대지진이 흔든 것은 대지뿐만 아니라 세상의 근거이자 법의 근거까지 흔들었다고 지적한다. “지진으로 세상의 근거, 즉 세상의 법의 근거였던 게 흔들렸습니다. 세상의 선의 근거이며, 선의 근거이기에 죄와 벌의 근거이기도 한 기초(근거, 대지)가 흔들렸습니다. 그러므로 질서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를 소원하게 만드는, 우리를 구별하는, 우리를 차별하는, 우리 사이에 격차를 두는 질서가 파괴되었습니다”(64쪽)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는 지진 재해 이후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를 알 수 없는, 의심에 시달리고 있다”며 “‘나는 올바르다’ ‘나는 정보를 갖고 있다’는 모든 사람의 말이 정치적 편향에 따른 발언처럼 들린다”고 고백했다. 이런 의심을 통해 자기 동일성의 붕괴를 경험했다는 그는 지진 재해 이후 자신이 전과 같은 동일 인물임을 믿을 수가 없다며 ‘정체성의 균열’을 토로하고 있다.
평론가인 가토 노리히로(64)는 ‘미래로부터의 기습’이라는 글에서 대지진 이후 일본의 고립에 대해 성찰한다. “미디어 문제를 미뤄 두더라도 어째서 일본 사회 전체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 정도로 고립감에 휩싸이게 되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그건 해일과 지진이 안긴 피해가 너무나도 심각하고 원전 사고로 인한 절망감도 있겠지만, 저는 역시 일본에는 세계의 일원이려는 자세가 원래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반성합니다. 앞으로의 일본을 생각한다면 세계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몹시 소중합니다. (중략) 요컨대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인구 문제, 자원 문제, 쓰레기 문제 등 세계 전체의 문제를 30년 정도 선취해 사고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132∼133쪽)
사실 대규모 재해가 일어나면 사회는 곧장 ‘내셔널리즘’으로 달려가기 마련이다. 3·11 이후 일본의 미디어들 역시 “일어서라 일본”과 같은 구호를 반복하면서 재해지의 ‘미담’을 전하고, 부흥해야 할 ‘건전한 일본’의 상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셔널리즘의 선동이 흘러나올 때, 거기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이들은 재해의 희생자들과 여전히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당사자들이다. 후쿠시마는 더 이상 피해지가 아니라, ‘일본의 부흥’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돼 버렸다. 애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도카통통’(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제목으로, 망치 소리의 의성어)의 망치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인 이케다 유이치(43)는 ‘우리들 후쿠시마 국민’이라는 글을 통해 이러한 내셔널리즘의 구호 속에서 그어지고 있는 분할선의 남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반경 10㎞, 20㎞, 30㎞…. 그리고 현의 경계와 국경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그어지는 분할선에 따라 모두가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안전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사능 피해는 그렇게 인간들이 긋는 분할선을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모두가 피폭의 위험에 처해 있는 당사자, 곧 ‘후쿠시마 국민’으로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이케다의 주장이다.
평론가 히로세 준(41)은 ‘원전에서 봉기로’라는 글에서 “결코 메울 수 없는 ‘균열’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봉기라고 부른다면 시위를 비롯한 여러 행동에 몇 명이 참가했든 간에 3월 중순 이후 적어도 일본에서 우리는 봉기기를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오늘의 데모가 기쁨의 선(線)인 동시에 피로의 선이기도 하다는 것은 단순히 자유롭게 길을 메우고 활보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비좁은 인도로 밀려나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 답으로 향하는 데모,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향하는 데모가 아니라 문제를 그것으로서 살아가는 데모, 준안정에서 준안정으로 진행되는 데모이기 때문이며, 즉 그 종착점이 종지부가 아니라 휴지부이며 거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254쪽)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과 브라질 등 많은 나라들이 원전 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은 여전히 이웃나라의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일본이 비워 둔 원전 선진국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듯, 원전 수주에 환호하고 원전을 더욱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재앙은 후쿠시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가 일본 지식인들의 사유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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