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조용래]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내셔널리즘 고조되나

Է:2012-03-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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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조용래]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내셔널리즘 고조되나

서상혁군은 올 봄 고교생이 됐다. 3·11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9개월을 며칠 앞둔 지난해 12월 초 일본 취재현장에서 우연찮게 그 이름을 들었다.

일본 도호쿠(東北)지방 3개 현 중 가장 희생자가 많았던 미야기(宮城)현, 그 가운데서도 주민의 약 3%에 해당하는 1116명이 사망·행방불명됐고, 전 가옥의 60%가 쓰나미로 파괴된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시에서다. 그리고 사토 신지(佐藤伸壽) 시청 주임의 도움을 받아 시 곳곳을 취재했다(본보 2011년 12월 12일자).

취재를 마칠 즈음 사토씨는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다고 했다. 5년 전 자기 집에 홈스테이로 왔던 한 한국 소년을 찾아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3·11 이후 한 번 전화를 받은 적은 있으나 연락처를 미처 받아놓지 못했다고 했다. 연락처를 적어둔 수첩은 진작 쓰나미에 쓸려 가버렸고.

2006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상혁군은 보이스카우트 교환 프로그램으로 1주일 동안 사토씨 집에 체류했고, 이어 사토씨 아들 유지군이 마찬가지로 서울의 상혁군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서로 한국어·일본어를 몰라 더듬더듬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안 상혁군은 사토씨를 ‘파더(father)’라고 부르며 곧잘 따랐단다.

인구 3만명 남짓인 일본의 작은 어촌에서 자식처럼 대했던 한국 소년을 찾아달라는 게 신기했다. 양국 교류의 저변이 이렇게나 넓어졌다니…. 귀국하자마자 상혁군을 찾았다. 단서는 상혁군이 다녔다는 초등학교뿐. 일단 그곳에 의뢰를 해 진학한 곳을 확인하고 수소문한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았다.

바로 사토씨에게 연락하고, 상혁군 집에도 사토씨의 사연을 알렸다. 이후 일본어가 가능한 상혁군 이모 이명주씨가 앞장서서 사토씨 가족과 직접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씨에 따르면 3·11 직후 상혁군은 사토씨 가족이 걱정돼 계속 전화를 했으나 통하지 못하다가 서너 달 후에야 겨우 전화 연결이 됐다. 그때 상혁군 가족은 유지군의 할머니를 비롯해 사토씨 가족이 모두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고, 상혁군 가족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에 감격한 사토씨 가족 또한 울음바다를 이뤘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깊은 교감을 나눴기에 행여 소통이 끊길까 전전긍긍했던 사토씨. 3·11 1주년을 앞두고 다시 그를 떠올린다. 이게 한·일 양국 간 민간교류의 현주소다. 지난 주말엔 상혁군과도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혁군은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한·일 민간교류의 한 축을 짊어지는 큰 일꾼으로 성장하리라 기대한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동일본대지진 1주년 관련 국제세미나에서 요시다 겐이치(吉田健一) 교도통신 서울지국장은 대지진 발생 직후 한국의 일본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지원노력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애증(love & hate)이 교차하는 가운데 ‘러브’가 ‘헤이트’를 처음으로 압도한 듯 보였다.”

하지만 ‘애증 관계’ ‘가깝고도 먼 나라’ 등의 이미지로부터 탈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시민사회는 일본 현대사를 지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만큼 3·11을 인류사적 의미로 규정하고 일본사회의 새 비전을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본 곳곳에 붙어있는 ‘감바레 닛폰(힘내라 일본)·도호쿠·후쿠시마(福島)’ 등의 플래카드에는 뜬금없게도 히노마루(일장기)가 끼어든다.

히가시마쓰시마시에서도 마찬가지. 이 사진은 그곳 주민들 점퍼 뒤쪽에 붙은 슬로건을 찍은 것인데 ‘HOPE’의 ‘O’자를 히노마루로 바꾸고 그 안에 시의 지도를 담았다(사진).

1995년 1월 6300여명이 희생됐던 한신 대지진 때도 일장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만큼 3·11은 엄청난 사태라는 것일까. 근세 이후 국가적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천황을 중심으로 일장기 아래 뭉쳐왔던 일본의 퇴행적 내셔널리즘 전통이 또 꿈틀거리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상혁군의 순수함과 3·11 이후 일본 내셔널리즘의 동향이 대비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카피리더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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