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봄 봄 봄
봄이다. 이름도 아리따운 봄이다. 눈을 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 봄은 달래나물이나 봄동무침처럼 입안 가득 상큼한 맛으로 번져온다. 반짝이는 햇살, 물오른 나뭇가지, 가벼운 공기, 상냥해진 바람… 이렇게 이 땅의 봄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님 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우리 정서를 담아 아름다운 우리말로 이렇게 노래한 이들이 있어 봄은 더욱 향기롭다.
봄이 어디서나 그런 건 아니다. 신문사 특파원으로, 런던대 연구원으로 혼자 런던에 머물 때 그곳의 봄은 스산하고 냉랭했다. 수시로 축축하게 내려앉는 3월의 날들은 서울의 봄과 거리가 멀었다. 공원, 마을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샛노란 수선화들이 바람에 쏴아 흔들려도 봄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브라더스 포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린 ‘일곱 송이 수선화’는 그저 애잔한 향수를 불러올 뿐이었다.
LA에 있을 때도 그랬다. 봄 같지 않은 봄, 그래서 우리 강토의 사계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절기마다 우리 세월과 기억을 담은 삶이 얹혀져 계절이 계절다웠음을 알았다. 그러기에 내 몸과 마음이 뜨내기로 스쳐 지나간 곳에는 어느 계절도 온전히 존재하지 않음을, 그냥 24시간으로 채워진 어떤 날들에 불과함을 알았다.
그랬다. 그때 마음이 봄을 만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봄을 맞이하는 마음은 내 땅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임을, 추억과 사랑을 공유한 가족 친구들과 마음과 얼굴을 비벼야 봄이 봄답게 찾아오는 것도 알게 됐다. 낯선 이들과 의례적인 만남만이 지속되는 그 땅에서 봄은 그저 그리움을 담은 슬픔임을 체감했다. 계절의 낭만이 담긴 우리 노래와 시문을 읊조리고 우리 산야에 자생하는 풀과 꽃을 보아야 제대로 된 계절의 색상으로 온 세상이 채색됨을 안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서울의 봄은 감사로 충만하다. 봄은 생명이 스며들어 나날이 변화하는 눈부신 연둣빛이며 분홍과 노랑이며 부드러운 갈색이다. 조물주가 대자연에 무지갯빛으로 예술혼을 풀어내는 광활한 캔버스다. 생명의 봄 한 자락을 나눠 가진 나도 내게서 멀어져간 또는 죽어간 인연들을 되살리고 싶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키워내는 봄’처럼 모든 관계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마음의 햇살인 웃음으로 따뜻하게 영접하고 싶다.
그리고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고 노래한 시인처럼 이 봄,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꾼다.
고혜련(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