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소쿠리·키조개 좌판 위로 사투리 흥정 ‘왁자지껄’… 전국 오일장 생기 넘치는 봄마중
봄은 시골 장터로 모인다. 좌판 할머니들의 소쿠리에는 모진 한파를 이겨낸 보리순과 냉이가 소복하고, 바다와 갯벌에서 막 건져낸 해산물들은 어물전에서 장바구니를 기다리고 있다. 가마솥 국밥의 구수한 냄새와 막걸리 한 사발에 어깨춤이 덩실거리는 시골 장터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축제장. 봄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투박한 사투리가 정겨운 시골 장터로 봄 마중을 떠난다.
◇북평장(강원 동해)=끝자리가 3일과 8일인 날에는 어김없이 200년 역사의 동해 북평장이 선다. 평소에는 한적한 도로가 장날에는 새벽부터 차일이 하나둘씩 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태양이 수평선을 뚫고 올라올 때쯤에는 난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로와 골목을 점령한다.
북평장이 활성화된 이유는 강원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7번 국도와 태백에서 내려온 37번 국도, 그리고 정선에서 넘어오는 42번 국도가 북평에서 만나기 때문. 바다와 항구가 지척인 북평장의 점포와 노점은 모두 800여 개. 단연 눈에 띄는 노점은 수산물 좌판으로 없는 해산물이 없을 정도.
북평장과 가까운 추암해변은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해돋이 명소. 촛대바위를 비롯해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묵호등대 아래에 위치한 논골마을과 천곡동굴, 망상해변 등 관광지도 많고, 어달해변 등에 자리 잡은 음식점들은 생선회와 곰치탕이 맛있다.
◇한산장(충남 서천)=한산 모시와 소곡주로 유명한 서천의 한산장은 30년 전부터 인구가 줄면서 이름 그대로 한산해졌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공방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인 ‘문전성시’를 통해 추억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장이 열리는 1일과 6일을 제외하면 한산면 소재지는 사람 그림자조차 그리운 고즈넉한 시골마을. 하지만 장날엔 100여 개의 점포와 셀 수 없는 좌판이 200∼300m도 안되는 골목길을 빼곡히 메워 꼼꼼히 둘러보려면 한나절도 부족하다. 후덕한 충청도 인심 덕분에 장바구니도 금세 묵직해진다. 한산장의 볼거리는 마을 입구의 ‘한다(韓多)공방’. ‘한다’는 한산의 다양한 문화가치라는 뜻으로 대장간 함석집 부채집 짚풀공방 솟대공방 모시공방 등 8곳에서 만든 작품들을 모아 전시판매하는 상설전시장. 한다공방에 전시된 물건들은 모두 장인들의 작품이지만 값이 싼 편이다.
◇화개장(경남 하동)=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로 유명해진 하동의 화개장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온갖 산물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시골장. 1960년대까지 노량에서 출발한 장사꾼 배가 줄을 지어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화개장으로 모일 정도로 번성했으나 요즘은 쇠락했다.
화개장은 끝자리가 1, 6일인 날에 열리지만 장날보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더 붐빈다. 초가지붕이 멋스런 장옥은 재첩국이나 장터국밥을 파는 음식점과 건어물전 등이 차지하고 있다. 장터 구석에 위치한 대장간은 추억의 공간으로 괭이, 호미, 쇠스랑 등 추억의 농기구들이 반갑다.
화개장은 김동리 단편소설 ‘역마’의 무대. 장터 입구엔 채장수와 옥화의 만남 등 소설 줄거리와 그림을 대리석에 새긴 조각물이 설치돼 있다. ‘박경리 토지길’과 ‘이순신 백의종군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트레킹 도중 허기를 달래며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
◇구례장(전남 구례)=구례 오일장은 전통시장으로서는 드물게 조선시대 한양의 장처럼 한식 장옥으로 단장을 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퇴락한 장옥들을 말끔히 헐어내고 5500여 평의 장터에 35동의 기와집 장옥과 4동의 팔각정 등으로 옛날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인 날에 열리는 오일장은 섬진강에서 태어난 해가 지리산 깊은 계곡에 봄빛을 뿌릴 때 쯤 활기를 띤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그램 단위로 포장을 해 판매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넉넉한 눈대중으로 물건을 사고판다.
인근의 산동 상위마을과 현동마을은 산수유꽃이 피면 마을 전체가 샛노란 점묘화로 변하고, 지리산 피아골 계곡의 마지막 마을인 직전마을은 고로쇠나무 수액으로 유명하다. 토지면 오미리의 곡전재와 마산면 상사마을의 쌍산재는 한옥 체험숙박지로 인기.
◇벌교장(전남 보성)=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보성의 벌교는 요즘도 고흥 순천 등 인근의 장꾼들이 몰려드는 오일장으로 유명하다. 평일에도 장이 열리지만 끝자리가 4일과 9일인 장날에는 벌교역 앞 도로와 골목이 모두 장터로 변해 북적거린다.
벌교장은 이른 새벽 벌교 아낙들이 갯벌에서 건져낸 싱싱한 해산물을 머리에 이고 총총걸음으로 소화다리 건너 벌교역전으로 하나 둘 모여들면서 시작된다. 벌교장은 인근 낙안들판에서 나는 푸성귀와 득량만에서 채취한 꼬막들의 집합장소로 지게, 삼태기 등 볼거리도 많다.
벌교장이 시골장의 정취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태백산맥’의 무대로 나오는 옛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 벌교역에서 홍교까지 1㎞도 안 되는 도로를 중심으로 소설 속의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이용한 일본식 2층 목조건물인 남도여관 등이 옛 모습 그대로다.
◇정남진토요시장(전남 장흥)=장날인 2, 7일보다 토요장터가 더 인기 있는 장흥의 정남진토요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크고 활기찬 시골장. 산과 들, 갯벌과 바다로 이뤄진 장흥에 물산이 풍부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장흥군에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할머니장터를 개설했기 때문.
토요시장에는 체육관 형태의 상설 수산시장이 따로 있지만 구경하고 흥정하는 재미는 아무래도 무질서해 보이는 난전이 제격이다. 요즘 나오는 해산물은 키조개와 굴로 장흥의 수산물을 대표한다. 끝물인 매생이와 첫물인 감태의 싱싱한 초록색에서 봄 냄새를 맛보는 것은 관광객들의 몫.
토요시장에 흥겨움이 빠질 수 없다. 시장 중앙에 마련된 공연장에서는 연예인 초청공연을 비롯해 품바 공연, 춤 공연, 관광객 노래자랑 등 신명나는 이벤트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드라마 ‘대물’의 세트장으로 ‘3대 곰탕집’이란 간판을 내건 허름한 한옥에서는 진짜로 곰탕을 판다.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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