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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강신명] ‘일진’ 뿌리 뽑으려면

[시사풍향계-강신명] ‘일진’ 뿌리 뽑으려면 기사의 사진

며칠 전 우리 경찰청에 파견되어 일하고 있는 일본 경찰간부 도가시(富?)씨와 식사를 하다가,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만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건너온 ‘일진(一進)’이라는 용어가 놀랍게도 일본에서는 통용되지도 않고 학교폭력과 뚜렷한 연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화될 때마다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일진’은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이해되고 있어 그 개념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최근 경찰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일진’ 해체 등과 관련하여 ‘일진’의 실체 논란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동적 비행 빨리 막아야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이 지적한 대로 학교폭력은 일반 사회에 부수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충동적 비행에 노출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에 단순한 일시적 일탈 수준일 때 그러한 해석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 같은 젊은 혈기가 지나치게 표출된 나머지 다른 학생들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주고, 때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경찰력 개입은 피할 수 없지 않겠는가. 교육자치를 존중하면서도 경찰이 일진 소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던 ‘일진(一進)’이 ‘일진(一眞)’과 ‘짱’으로 변질되어 학교폭력 피라미드 정점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약한 학생을 장기간 왕따시키고, 물건을 뺏고, 돈을 상납받으며, 심지어 일부는 조직폭력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행동수칙까지 강요하면서 학교를 지배하고 있다. 또한 갈수록 ‘일진회’ 등으로 집단화되어 학교를 공포와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로 존경받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소위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냉소주의가 일반 학생들 사이에 확산되어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일진’ 등 학교폭력의 원인이 가해자의 정신불안에 따른 공격적 성향, 가정폭력 등 결손가정에의 노출, 성적 만능 교육환경, 그리고 음란·폭력이 만연한 유해환경 등으로 다양하며, 그 근본적인 해결도 선도와 교육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학교와 가정의 도움 필요

그렇다고 해서, 선진 외국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진’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학교폭력의 진원지가 된 지 20년이 돼가는데도 오히려 학교폭력 피해자가 전학을 가야 하고 심지어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어린 학생이 학교폭력에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낙엽처럼 지는 무력한 현실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어려서부터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내몰린 ‘일진’이 낙인 과정을 거쳐 조폭 세계의 주요한 인적유입 대상으로 악용되면서 사회불안의 근본 기저가 되고 있으므로 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실 어느 누가 학교폭력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그들의 부모이자 가족이자 이웃이 아니던가?

이제는 학교폭력의 진원지인 ‘일진’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학교폭력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할 때가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경찰은 ‘일진’ 해체와 능동적인 선도를 통한 학교폭력 해결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경찰이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근본적 대안이 아니라, 학교와 교육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우리만의 특수한 ‘일진’에 대한 적극적 대책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장 경찰관도 ‘일진’을 형사처벌이 가능한가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미래인 학생의 안전과 인권보호의 문제로 접근하는 발상의 전환이 특별히 요구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경찰 중심의 대책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출한 학교폭력예방대책법에 따라 학교와 우리 사회 전체가 교육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최근 경찰의 ‘일진’ 대응이 학교폭력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강신명 경찰청 수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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