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오랜만에 본 대통령 기자회견
“측근·친인척 비리에 직접적이고 진솔하게 사과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나라에서 TV로 중계되는 대통령 기자회견이 시작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다. 자그마한 흑백 TV 앞에 모여 앉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회견문을 읽는 대통령 모습을 지켜보곤 했었다. 유신의 종말이 다가오던 79년 신년 기자회견 때는 박 대통령이 예년과 달리 서지 않고 앉은 채 회견을 해 “이제 힘이 빠진 것 같다”고 수군대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떠오른다.
노태우 정부 때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들러리로 참석한 적이 있다. 정치부 선배를 따라 회견장에 갔더니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가 다가와 질문자가 정해져 있다고 귀띔하면서 그래도 손을 계속 들라고 부탁했다. 달리 방법이 없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어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는 청와대 출입기자 자격으로 자주 질문할 수 있었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국정 최고지도자와 국민을 연결해주는 최선의 소통 기회다. 미국 대통령 취재의 산증인인 헬렌 토머스(91)는 “기자회견은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장(場)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했다(‘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국민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을 기자가 대신 물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말일 게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부에서도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을 자주 했다. 비록 각본에 따른 것일망정 1월 초 신년 회견은 거의 빠짐없이 했다. 비교적 말주변이 없는 김영삼 대통령도 기자회견만은 꺼리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신년, 혹은 취임기념 회견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순방 중에도 회견하는 것을 즐겼다. 토론을 좋아한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들과 수시로 일문일답을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좀 특이하다. 신년, 혹은 취임기념 기자회견의 관행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취임 후 4년 동안 5번 회견을 했지만 모두 특정 현안에 대해 해명하거나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8년 쇠고기 사태(2번), 2009년과 2010년 G20 개최, 2011년 동남권신공항 백지화 관련 회견이 그것이다. 올 1월 초에도 기자회견 대신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인 ‘신년연설’을 했다. 국민에게 가슴을 열고 진정으로 다가서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으로 비춰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대통령이 어제 오랜만에 기자회견을 했다. 약 9개월 만이다. 거창하게도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이라 이름 붙였길래 한 시간 내내 눈여겨 지켜봤다. 이 대통령은 회견을 시작하면서 “기자 여러분의 질문을 국민의 목소리라 생각하고 성실하게 답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쉬움을 남긴 회견이었다. 괜히 기대를 가져서일까.
첫째 질문. 국민을 분노케 한 측근·친인척 비리에 대해 대통령은 직접적이고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내 주위에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나올 때마다 정말 가슴이 꽉 막힌다. 화가 날 때도 있고 가슴을 치고 밤잠을 설친다”며 “국민께 할 말이 없다”고 답변하는 것으로 끝냈다. 국민의 엄청난 배신감을 생각하면 머리 숙여 사죄하는 것은 기본일 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둘째 질문. 현 정부 인사가 ‘돌려막기’ ‘재활용’이란 지적에 대해 이 대통령은 미국의 경우 정권 초기에 ‘캘리포니아 사단’ ‘텍사스 사단’이라 해서 대통령 측근들이 함께 백악관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했다. 그걸 따라 2008년 ‘고소영 강부자’ 인사를 했단 말인가. 대한민국이 미국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은 그런 소릴 해선 안 된다. 독선적 파행 인사에 대한 시중의 불만에 귀 닫지 않고서는 결코 그런 얘길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도, 경제회생 방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회견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도 자주 여러분과 애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국민보다 대통령을 위해 더 필요하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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