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분열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은?… 한국복음주의협 ‘한국교회 화해와 협력’ 발표회

Է:2012-02-19 18:00
ϱ
ũ
한국교회 분열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은?… 한국복음주의협 ‘한국교회 화해와 협력’ 발표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가 최근 서울 신문로1가 새문안교회(담임목사 이수영)에서 ‘한국교회의 화해와 협력’이란 주제로 월례 조찬기도회와 발표회를 열었다. 발표자들은 한국교회의 분쟁과 분열의 원인과 현실을 짚어보고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과 방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행사장은 한국교회의 분쟁과 분열이 사라지길 염원하는 목회자들의 통성 기도 소리로 가득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흘러 나왔다. 4명 발표자들의 주요 강연 내용을 정리했다.

▶발표자

손인웅 덕수교회 목사, 박종화 경동교회 목사,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 최명국 백석대 교수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하나돼 연합일치 박차 가해야”

◇손인웅 덕수교회 목사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는 이미 하나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연합기구로 일정기간 자기 색깔을 내면서 활동해왔다. 그러나 진보에도 닫힌 진보와 열린 진보가 있고, 보수에도 닫힌 보수와 열린 보수가 있어서 열린 진보와 열린 보수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실증하는 비정부기구(NGO)가 탄생해 10여년간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는 1998년에 14개 교단의 보수와 진보교단의 갱신운동 그룹들이 모여서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갱신과 섬김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난 14년 동안 한국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각 교단 안에는 열린 사람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그 열린 사람들의 모임을 확장해 나가면 초교파적인 큰 세력이 돼 그 운동의 파장이 대단히 커지는 것을 실증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목회자 운동으로 ‘미래목회포럼’이라는 NGO가 있어 초교파적으로 50대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갱신과 연합과 일치와 봉사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 세력이 대단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 화해와 협력, 연합과 일치의 큰 성과를 이루는 봉사단체가 2008년에 태동했는데, 바로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이다. 이 운동은 2010년 부터 시작된 사회복지 운동으로 ‘한국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라는 이름으로 120년 한국교회 역사상 초유의 ‘복지 엑스포’를 통해 복지계와 봉사계를 총망라해서 10만여 명이 참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10년에도 2회 엑스포에 12만여 명이 참여하며 한국교회의 연합일치 운동의 꽃을 피웠다. 또 한가지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통해 전국적으로 한국교회가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하나가 되는 큰 역사를 일으켜 나가고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교권주의자들 몇 사람이 한국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이지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화해와 협력단계에 이미 도달했다고 본다.

다만 하나의 연합기구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도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성도들의 교회일치 열망이 요원의 불꽃같이 타오르게 되면 하나님의 하나되라 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현가능한 연합일치의 방법 하나를 소개한다면 한기총과 NCCK를 통합해 하나의 연합기구로 교단장협의회를 복원하는 방법이다. 2007년까지 완성하기로 하고 로드맵 10단계 중 4단계까지 진행하다가 중단된 상태다. 현재로서는 이 길로 가는 길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박종화 경동교회 목사 “일치의 목적은 바로 교회일치, 선교일치, 봉사일치”

“교회일치의 문제는 일치의 ‘틀’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왜 일치냐 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 상황에서 보면 ‘기구’ 중심 일치의 맹점은 거의 항상 교권과 자리 및 이권 다툼이라는 비신앙적 비신학적 요인들이 크게 자리한다.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우선 실천해야할 과제가 있다.

하나는 ‘모이는 교회의 삶’을 통한 일치이다. 즉 ’예배일치’인데, 신학적 성향이나 교리입장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치를 이루자는 것이다. 전국교회가 주일마다 같은 성경 본문(한 본문일 수도 있고 또는 여러 비슷한 본문을 주고 선택케 할 수도 있음)으로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 일치’가 있을 수 있다.

한 성경을 모든 교회가 같이 채택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동시에 찬송가도 ‘통일된 찬송가’로 하되 교파 별, 교단 별로 원하면 별도의 ‘부록 찬송’을 덧붙여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찬송 이야기에 덧붙일 것이 있다. 기존의 가사를 수정하지 말고 절수를 보완 확대해 감으로 입에 익은 은혜로운 가사를 지킴과 동시에 내용상 그때마다 필요한 구절을 선택할 수 있는 풍부한 다양성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교회일치가 ‘선교와 봉사를 위한 일치’여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의 존립 근거도 그렇고 교회의 일치노력 목표 역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에큐메니컬 정신의 핵심이다. 세계 제1차 대전이 지나고 세계교회는 ’교리는 갈라서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Life & Work, Stockholm 1925)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연합운동이 출범했다. 이미 그 이전인 선교대회는 ‘금세기에 세계를 복음화 하자’(IMC, Edinbourgh 1910)는 목표로 선교를 통한 에큐메니컬 운동이 시작됐다. 일치의 목적은 바로 교회일치, 선교일치, 봉사일치인 셈이다.”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 “분열 해결책은 서로의 공통 분모를 찾는 것”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연합하길 원한다면 분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싸우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싸운다. 제3자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이 보인다고 할 지라도 당사자의 눈에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장로교의 경우 통합은 합동측을 향해 분열의 원인은 모 인사의 스캔들을 감추려는 의도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거나, 합동측은 통합측을 향해 용공분자라거나 하는 식으로 공격하면 안된다. 통합측은 보수주의 기독교가 염려하는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하며, 합동측은 통합측이 염려했던 세계교회와의 연대를 진지하게 고려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필요에 따라 연합에 참여하면 된다. 신학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 보수와 진보가 연합하기 힘들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한국기독교를 발전시켜야 한다면 보수 진보를 떠나서 한국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하려는 인사들은 가능한 한 서로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사이드에 제쳐놓고, 공통 분모를 확인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특정성향을 가진 국제대회를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새로운 전기로 삼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이것은 한쪽에게 치명적인 패배감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쪽이 분명한 거부 입장을 가진다면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 진정한 연합운동이다.”

◇최명국 백석대 교수 “자신을 희생하려는 순교자적 자세 보여야”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화해의 성취이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분쟁·분열 극복을 위해 수많은 회개와 결단 선언을 했지만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쪼개진 성(城)을 고치려 하지 않고 황무지의 여우처럼 자기 안전만을 찾으러 다닌 것을 경고한 구약 예언자의 소리처럼(겔13:3∼8) 교계 지도자들이 깨어진 성을 고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한다.

여기엔 교계 언론인도 포함된다. 아무리 잘 뛰는 육상선수(한국교회)라 해도 밟지 말아야 할 트랙을 밟으면 실격 당하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과하거나 독선적인 것은 자제해야 한다. 과욕, 과민반응, 과속, 과격, 집착 등이 심하면 중독이 된다. 한국교회 분쟁의 불씨도 거의 다 이런 것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어떤 좋은 방안을 내놓는다해도 결국 물신주의와 교권욕, 그리고 자신만이 절대선이라는 집념을 과감하게 벗어나지 않는 한 분쟁 극복은 물론 별다른 갱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말이 아니라 행동을 요구한다. 말의 옳음에 머물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려는 순교자적 자세가 보여질 때 분쟁·분열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회 통합이나 교계의 분쟁극복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성 안에서 만나는 조화와 성취라는 점이다. 또 통합(화합)에 접근하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과제도 떠안게 된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Ŀ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