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정태춘과 박은옥

Է:2012-02-15 18:48
ϱ
ũ
[돋을새김-정진영] 정태춘과 박은옥

“위로와 용기, 격려와 희망을 주는 그들의 노래가 널리 퍼지기를…”

30여년 전 카세트테이프로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시 같은 노랫말과 서정적인 곡조의 ‘시인의 마을’과 ‘촛불’은 10대 후반의 나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음유적 창법을 통해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부른 노래들은 감흥 이상의 감동이었다.

일제 소니 소형녹음기의 ‘리와인드’와 ‘플레이’ 버튼을 수없이 눌러가며 따라 불렀던 그날의 기억이 굳은살처럼 박혀 있다. LP판과 정품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음반가게에서도 고객이 원하는 가수의 노래들만을 따로 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팔던,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작권 무개념’ 시절이었다.

몇 년 후 그는 짝을 만나 ‘가수 정태춘’에서 ‘가수 정태춘 박은옥’이란 새로운 고유명사를 갖게 됐다. 결혼 후 수년 동안 ‘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 ‘북한강에서’ ‘봉숭아’ 등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하며 여백과 울림이 깊은 서정성의 가수,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들의 노래는 감성을 때리는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대중가요의 통속적 ‘사랑 타령’은 아니었다. 한 평론가는 ‘가라앉아 깊고 그윽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이때의 노래들을 가장 좋아한다. 내 나름대로 꼽는 정태춘 박은옥의 명반(名盤)컬렉션에 오른 노래들은 대부분 이 시기의 것들이다.

80년대 후반 그들의 노래, 정확히 말하면 정태춘의 노래는 변하기 시작했다. ‘현실도피적 서정성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노래에 무거운 ‘서사성’을 담았다. 환경, 분단, 미군, 5월 광주, 도시빈민 등 시대 상황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노랫말에 등장했다.

6집 ‘무진 새노래’(88년)에서 처음 드러난 그의 현실인식은 7집 ‘아, 대한민국…’(90년),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92년)로 이어진다. 그를 볼 수 있는 곳은 공연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인 곳이나 이슈가 요동치는 현장이었다. 해직교사 모임, 파업 현장, 사전검열 철폐 집회, 미군부대 이전 반대 시위 현장 등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 가수가 아니라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때의 노래들은 이전의 것들과는 달리 내게는 다소 낯설었다. 곡조는 흥얼거리기 어렵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단조로웠고, 간혹 전투적인 노랫말은 불편했다.

부부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9년 10월의 마지막 밤,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였다. 데뷔 30주년 기념공연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가 마련된 것이다. 맞은 편 경향갤러리에서는 화가 사진작가 등 예술인 100인의 ‘정태춘 박은옥 헌정 전시회’가 열렸다.

전율을 느낄 만한 박은옥의 애절한 목소리로 시작된 공연은 2시간30여분 내내 450여 청중을 매료시켰다. 혼자 또는 부부가 같이 부르는 노래를 관객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하거나, 간혹 나직이 따라 부르며 화답했다. 내 청춘의 감수성을 자극했던 그때의 노래들이 이어지면서 내 콧등도 시큰해졌다. 공연 도중 구순의 정태춘 모친이 소개될 때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이 끝난 늦은 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정동길에는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고백컨대,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표를 구하지 못해 문화부 후배 기자에게 그날의 호사를 신세졌음을 이제야 밝힌다.

그들이 다시 관객을 찾는다. 10년 만에 나온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들고 다음 달초 3년 만에 무대에 선다. 한 언론은 새 앨범에 담긴 곡들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색, 작가 자신을 은유한 비극적인 서정, 웅혼한 서사의 날개를 담았다고 평했다.

사람들은 박은옥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노래’를, 정태춘은 ‘세상을 바꾸는 노래’를 부른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게는 그 같은 ‘서정’과 ‘서사’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 갈수록 웅숭깊어지는 그들의 노래가 위로와 용기, 격려와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이 들려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며칠 남지 않았다. 늦기 전에 이번에는 서둘러야겠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