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① 시인 황병승

Է:2012-02-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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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① 시인 황병승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여기엔 다양성을 문화 코드로 삼으면서도 우리가 정작 자기중심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스스로를 약화시킨 탓도 있을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 현대시에서 가장 첨예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인들의 시를 통해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들여다본다.

여장남자, 크로스 드레서, 트랜스젠더… 미증유의 땅에 용감하게 삽을 들었다

시인 황병승(42·사진)은 하나의 현상이다. 2003년 문예지 ‘파라21’로 등단할 때부터 예민한 언어와 전복의 상상력을 들고 나왔다. 우리 문단에서 성소수자 문학으로 치면 황병승을 따라올 자가 없다. 여장남자, 크로스 드레서, 트랜스젠더 등등. 그는 미증유의 땅에 들어가 용감하게 삽을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원래 우리 주위에 있었다.

TV에도 괴짜 ‘화성인’이 등장하는 세태지만 그의 상상력은 더 심오한 땅으로 간다. 전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시 특징들도 꽤 분별 있게 살려낸다. 그래서일까. 그를 두고 ‘소통 불능의 언어’라고 비난하던 비평도 잦아졌다.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2005)와 ‘트랙과 들판의 별’(2007) 이후 그의 시는 3인칭 시점에서 1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추세에 있다.

어린 왕이 말했다// “밤이 되어도 내 곁을 지켜준다면, 너를 나의 왕비로 삼을 텐데…”// “이것 봐, 이 거대한 성에는 누가 살고 있어? 수천 명의 시녀들과 나를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수백 명의 신하들이 살고 있지 너는 겁먹은 게 틀림없어 하지만 너는 어린애가 아니야 약간 피가 나는 거지”// 시녀가 말했다// “제게서 내려오세요”// 어린 왕이 말했다// “나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아, 나는 여기서 영원히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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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 꿈을 꾸었다 그녀는 내 책을 들고 있었고 내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으며 내가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어리고 과장되고 확신을 뒤집는 시기여서 나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침대 시트를 대충 정리한 뒤에 병실을 서둘러 나갔다 얼음주머니에 맺혀있던 찬물이 콧등을 타고 내려와 콧물처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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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속의 좀길앞잡이, 갑자기 이런 구절(‘병 속의 좀길앞잡이’ 전문·2011년 ‘한국문학’ 봄호 )


좀길앞잡이는 딱정벌레목 길앞잡이과의 작은 곤충이다. 시를 쓴 후 제목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좀길앞잡이는 시 속의 어린 왕과 동격이다. 어린 왕이 올라탄 시녀는 피를 흘리고 있다. 어린 왕은 “너는 어린애가 아니야 약간 피가 나는 거지”라고 강변하고 있다. 시녀가 “제게서 내려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성적 메타포 이상의 절박하고 어두운 에너지를 동반한다.

여기서 ‘밤’은 단순한 시간적 상태만은 아니다. 건강한 사람들 건너편 세계에 대한 이미지화다. 이에 대한 대답인 “나는 여기서 영원히 살 거야!”라는 어린 왕의 언술은 가학적이다. 왜 하필이면 어린 왕인가. 그건 늙을수록 유아기적 젖꼭지를 찾는 인생 후반기와도 맞물린다.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린 모성의 대체. 태반에서 태어난 인간 자의식에 이 시는 젖 물린다.

이 시의 등장인물을 보라. 어린 왕, 시녀, 간호사가 겉으로 드러난 전부이지만 이들은 모두 ‘나’의 꿈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는 고전적 ‘일장춘몽’을 해체한다. 제목 ‘병 속의 좀길앞잡이’는 병(病)든 ‘우리’이자 병(甁) 속에 갇힌 ‘이중성의 우리’를 상징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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