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계급사회’ 저자 남태현 “한국 사회 영어 광풍은 기막힌 사기”

Է:2012-02-0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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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계급사회’ 저자 남태현 “한국 사회 영어 광풍은 기막힌 사기”

미국 워싱턴DC 근교의 솔즈베리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남태현(42)씨. 2010년 여름, 세 자녀를 데리고 9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기왕 고국을 찾았으니 자녀들이 한국말이라도 배우기를 바랐다. 하지만 서울에 머문 한 달 동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놀이터에서 만난 한국 아이들은 한결같이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영어유치원이나 외국어 학교에 다닌다는 그 아이들 앞에서 한국친구와 사귀며 한국말을 배우리라는 기대는 수포가 되고 말았다.

자녀들의 영어능력 성취를 위해서라면 부모들이 모든 것을 희생할 것 같은 기세에 놀란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사회의 ‘영어 망국병’을 다룬 ‘영어계급사회’(도서출판 오월의 봄)을 집필했다. 9일 남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의 영어 광풍현상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외국어대를 나와 미국 캔자스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전형적인 지미(知美)파랄 수 있겠다. 누가 봐도 영어의 수혜자인데 이런 책을 썼다는 게 역설적이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영어에 대한 압박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어왔지요. 영어간판과 영어로 된 회사 이름이 그것이지요. 럭키금성은 LG가 됐죠. 미국사람들은 LG가 그들의 모토인 ‘Life is Good’의 줄임말인 줄 압니다. 럭키금성이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선경은 SK로, 한국통신은 KT가 됐죠. 상장사 1555개 가운데 영어회사 이름은 63%인 989개에 달합니다. 회사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사정은 비슷하더군요. 경기도 여주군의 도시 브랜드는 ‘Sejong’이라는 큰 영문 문구 아래 자그마하게 ‘세종여주’라는 한글문구가 걸려 있지요. 영어로 도시브랜드를 만든 곳이 경기도에서만 수원시(Happy Suwon), 고양시(Let’ Goyang), 광주시(Gwangju Clean), 안산시(Bravo Ansan) 등 11곳이지요. 우리 곁에 얼마나 깊이 영어가 파고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단면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몰입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공교육으로 영어 사교육을 흡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른바 ‘어륀지(오렌지)’를 주창한 MB 정권 초기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학생들에게 영어로 사회나 과학을 가르치겠다는 발상을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인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까지 나서서 구체화하고 공론화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명박 정부의 설익은 인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겠죠. 정부가 아무리 영어를 강조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영어어천가’ ‘미국어천가’는 참으로 뛰어난 사기입니다. 다 잘할 수도 없고, 다 잘할 필요도 없는 영어에 미쳐 있는 것 자체가 참으로 기막힌 사기입니다.”

-한국 대학들의 영어 광풍에 대해서도 지적했는데.

“한국 대학들은 영어 폭풍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카이스트는 영어강의비율이 91%, 포스텍이 60%에 육박하더군요. 고려대도 40%이고 한국외국어대, 성균관대, 경희대도 35% 정도 됩니다. 하지만 연세대에서 영어 강의를 듣는 공대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우리말 강의에 비해 2.63배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강의 만족도는 7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영어 강의는 전공 내용 전달을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신문사들의 대학 평가가 큰 영향을 끼친 게 사실입니다. J일보의 2010년 종합평가 배점을 보면 국제화가 70점으로 배분돼 있더군요. 이를 백분율로 환산하면 전체 평가의 20%, 이 가운데 영어 강좌는 전체 비율의 5.7%에 달합니다. 불만은 많지만 대학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학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영어 강의를 늘리는 추세지요. 외국학생을 더 많이 유치하고 그 자체로 국제화 점수를 높이는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식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죠. 대학이라는 곳이 남의 잣대에 허우적대고 있는 슬픈 자화상이지요.”

-영어 산업의 성장과 영어 광기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놓았던데.

“1998년 문을 열어 이제는 업계 최강자가 된 청담어학원은 2011년 현재 전국에 87개 학원이 있습니다. 자회사인 에이프릴어학원까지 합치면 2010년 말 현재 114개 지점이 전국에 퍼져 있지요. 이들 학원을 운영하는 청담러닝의 매출액은 2006년 460억원에서 2008년 800억원을 넘더니 2009년에는 1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영업이익 규모도 2007년에 이미 100억원을 돌파했고 이후 꾸준한 이익을 내고 있지요. 청담러닝을 비롯한 거대학원들은 우리 사회의 과격한 영어 열기의 최대 수혜자일 겁니다. 게다가 영어시장에 몰려드는 외국자본도 문제입니다. 소프크뱅크 벤처스는 전국 142개 지점을 보유한 확인영어사에 거액을 투자했고 AIG그룹은 초중등 영어학원인 아발론교육에 62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메가스터디의 외국인 투자비율은 2008년 7월 기준으로 50%를 넘어섰지요. 한국의 영어 열기가 외국투자자들의 지갑까지 두둑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과열현상의 원인을 ‘세계화’가 아닌 ‘미국화’에서 찾고 있는 대목이 흥미롭던데.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세계화를 미국화 내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도 세계화의 일부라는 것은 미국 안을 들여다보면 잘 알 수 있어요. 미국 어디를 가 봐도 남미 이민자(히스패닉)가 있지요. 히스패닉은 현재 5000만명을 넘어 미국 전체 인구의 16.3%에 이릅니다. 최근 눈에 띄는 현상으로는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늘고 있다는 것이죠. 2008년 미국 중고등학교의 4%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지요. 이는 최근 10년 동안 3%가 늘어난 수치입니다. 반면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1997년에 비해 18%나 줄어든 46%로,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는 미국의 조각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셈이지요.”

그는 “영어의 문제는 개인이나 한 집단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은 계속 실패했을 뿐 아니라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를 한 셈인데 이제라도 정부는 문제가 아닌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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