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인재주의가 새로운 대안 될까
“효율과 성과에만 치중하다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윤리 교육 강화해야”
수년전 어느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모 재벌총수가 제법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 아들 2명에게 후계자수업 겸해 일을 맡겼다고 한다. 1년 뒤 아들들이 들고온 성과물에 총수는 기가 막혔단다. 큰 녀석은 아버지 돈으로 주식투자를 해 얼마 벌었다며 득의만만했고, 둘째는 매출 목표를 초과달성했다며 의기양양했다.
고급정보를 이용해 손쉽게 돈을 벌려는 큰아들과 낮은 매출목표를 달성했다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작은아들에게 총수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그 총수가 아들들에게 바란 것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도전정신이었다고 한다. 무모하리만치 달려들던 재벌 1세들의 모험정신, 기업가정신이 사라진 기업풍토는 마침내 돈이 되면 동네 빵가게, 구멍가게까지 넘보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2, 3세가 심심풀이로 덤벼든 빵·커피 사업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적이 잇달아도 꿈쩍도 않던 재벌들이 대통령이 작심하고 나서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모습이다. 대통령은 ‘흉년에는 땅을 사 모으지 않는다’는 경주 최부자 얘기까지 거론하며 부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지적했다. 부자들의 책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하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귀에 딱지가 앉았을 법하지만 정작 가진 자에겐 마이동풍이었나 보다.
근자에 자본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람 냄새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최근 들어 재조명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급기야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는 유럽발 재정위기로 드러난 자본의주의의 위기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포럼 창설자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 회장조차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 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 통합이 빠져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슈밥 회장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이론으로 ‘인재주의(talentism)’를 강조했다. 자본이 최대 생산요소인 자본주의와 달리 인재(talent)가 최대 생산요소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란 전망이다.
효율과 성장일변도로 치달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는 탐욕만 난무할 뿐 윤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수익창출이라는 결과만이 가치기준이 되지 과정상의 윤리나 인간미는 애초부터 없었다. 흉년 때 굶주린 농민이 땅을 내놓을 때 얼른 싸게 사버려야 하는 것이 바로 못된 자본주의의 덕목이었다.
이 같은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이론이 극에 달한 지점에 청년 실업문제, 부의 양극화 문제 등 현대 사회의 갖가지 병리현상도 함께 잉태되고 있음을 안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의 학교 폭력 문제도 잘못된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의 연장선에서 싹튼 것이 아닐까.
성적 지상주의로 흐르는 공교육. 인성교육은 간 곳 없고, 시험 요령을 가르치는 교사에다 오직 점수에만 혈안이 된 학생만 존재한다. 교내 폭력이 난무해도 스승은 간 곳 없고 학교는 덮어두기에 급급하다. 명문대 진학률로 고교우열을 가리는 현실. 바로 효율과 성장일변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의 우리네 학교 모습이다.
1970년대 고교에 ‘국민윤리’란 과목이 있었다. 역사와 철학을 버무려놓은 내용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당시 엄격한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국민윤리 과목은 북한 공산주의에 맞선 사상교육 정도로 치부되면서 학생들에겐 인기 없는 과목이었다.
이제 정치·경제 사상적 과도기에 처한 우리 학생들에게 정말 윤리 교육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과거처럼 정치적 목적이 아닌 자본주의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윤리교육 말이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 정신, 자본가 정신은 물론, 기업과 자본가의 사회적 책무 등을 다뤄야 한다. 교내폭력 등으로 지탄 받는 학교지만 그래도 믿을 건 공교육뿐이다. 또 윤리 교육을 통해 인성 교육도 함께 해야 한다. 인재주의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하는데 사람 냄새 나지 않고 기(技)와 술(術)에만 능한 인재를 무엇에 쓰랴.
편집국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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