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조용래] 그들이 ‘빵집’을 사랑한 까닭은

Է:2012-02-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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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조용래] 그들이 ‘빵집’을 사랑한 까닭은

“초점은 자본주의 여부가 아니라 최소한의 도리를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가치문제”

1990년대 초 유학에서 막 돌아와 시간강사로 이 대학 저 대학을 전전할 때였다. 배우는 거야 이력이 났지만 가르치는 것은 애송이였으니 강의는 부실하고 교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없어 수업시간은 늘 부산하기만 했다.

꾀를 하나 냈다. 수업에 집중하는 것을 조건으로 학기 중에 ‘돈 버는 비법’을 따로 강의하겠노라고. 솔깃한 표정이 번지면서 수업은 일단 안정을 찾았으나 ‘비법’을 언제 밝힐 것이냐는 압력이 거셌다. 외국 사례라도 들을까 싶었던 걸까. 가능한 한 뒤로 미뤄 그 덕을 좀 보려고 했으나….

월급쟁이보다 제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붕어빵, 떡볶이, 김밥 장사 하던 사람들이 억 단위의 장학금을 기증하는 건 봤어도 월급쟁이가 그랬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그게 하나의 증거라고 우겼다. ‘에이∼’ 하는 야유가 쏟아졌지만 내친김에 주장을 폈다.

요는 노동자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 노동자는 임금만 겨우 받지만 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제 임금은 물론 영업이익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이 대목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돈을 벌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필멸(必滅)을 주장했던 카를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력의 수탈’이라고 봤다.

사실 그것은 노동자의 몫을 자본가가 빼돌린다는 이른바 ‘잉여가치의 탄생’과 ‘노동력 착취’에 대한 설명이었다. 어떻든 그날 학생들은 엉뚱한 비법에 자극을 받았는지 나름의 찬반 주장을 펴면서 강의는 퍽 알차게 진행됐다. 뜬금없이 옛 얘기를 꺼내는 건 요즘 재벌가 자녀들의 ‘빵집’ 등이 항간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가 사람들은 당연히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 노동력 착취설 등을 신봉하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 사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들은 그 ‘비법’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다. 빵집 찻집 음식점 면세점 등을 직접 경영하고 나섰으니.

그런데 이들은 지금 여론의 거센 비판 앞에서 앞 다퉈 사업을 접는다. 버티고 있는 재벌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양새가 피차 우습게 됐다. 시장퇴출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압력을 보면 과연 이게 자본주의 나라인가 싶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자 속내야 어찌 됐건 썰물 빠지듯 사업을 접는 건 또 뭔가. 모두 국민정서법에 익숙한 탓일까.

사실 초점은 자본주의 여부가 아니다. 최소한의 도리를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가치에 대한 문제다. 길가 떡볶이집 주인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터다. 좋은 직장을 얻자고 해도 그만한 커리어나 능력이 없고 떡 하니 점포를 차릴 수 있는 자금조차 없으니.

그런데 재벌가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 창업을 하려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아이템을 택하든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벤처기업을 벌이든지. 하지만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아이디어도 없고, 첨단 기술도 없었던 까닭이다.

있는 것은 풍부한 자본력뿐, 그들은 이걸 활용하려고 덤볐다. 그리고 경기침체에도 수요가 꾸준한 업종에 눈독을 들였다. 바로 의식주 분야였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고급소비 붐을 적절히 활용했다. 고급브랜드를 앞세워 시장표 빵집을 구축한 것이다.

고급 인테리어에 우아한 분위기의 매장을 열고 기회가 된다면 계열사 지원도 받아내면서 몸집을 불렸다. 같은 상품이라도 가격과 질은 천층만층일 수 있고, 소비자의 선택을 넓혀주는 게 자본주의의 특징이 아니냐는 그럴싸한 논리로도 무장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간 여러 번 고비를 맞으면서 진화해왔다. 약육강식의 자유방임주의는 폐기된 지 오래다. 가난한 자를 등쳐서라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식의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꼽히는 처지다.

공정사회, 대기업 영역, 서민형 업종 등을 거론하자는 게 아니다.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구하고 싶다. 돈 버는 비법만 판치는 사회는 너무 천박하다. 그런데 잠깐, 그들의 ‘빵집 사랑’은 과연 이번으로 끝날 것인가.

조용래 카피리더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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