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다시 주시는 기회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구정을 맞으며 동양의 달력은 참 자비롭고 여유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위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정을 맞으며 다짐했던 새해 결심들이 작심삼일들이 되어 희미해져 갈 무렵 다시 구정이 오면서 새롭게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자비로운가.
꿈과 현실세계를 혼동하지는 않지만, 내 삶의 전환기 속에서, 혹은 중요한 변화와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꿈’을 통해 하늘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놀라운 신비와 은혜의 체험을 하곤 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칼 융이란 심리학자가 말한 바 있는, 꿈이란 현대인이 잊어버린 ‘하나님의 잊혀진 언어’라는 말에 동감을 하고 있다.
부모님들이 이미 하늘고향에 계시기 때문에 특별히 갈 곳이 없이 푹 쉬면서 지낸 구정 연휴, 꿈속에서 절친했던 친구의 방문을 받았다. 그 친구는 군목으로 시무하던 중 안타깝게도 일찍 하나님 나라로 가버린 친구였다. 대학원에 진학해 알게 된 친구였지만 우리는 때로 서로가 상담 파트너로 상처를 나누고, 깊은 우정으로 미래의 꿈을 함께 가꾸던 소중한 시절의 벗이었다. 그가 하나님 품안으로 가기 몇 주 전 나를 불렀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자의 모습으로, 이미 영원의 향기를 온존재로 맡은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자신의 몫까지 담당하는 훌륭한 목사, 성실한 목사, 사랑의 종이 되라고 당부하고 축복해 주었다.
할말을 찾지 못해 벙어리처럼 앉아 눈물만 흘리는 나의 손을 잡아주며, 마음에 맺힌 사람들을 용서하고, 예수를 닮은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라고 깊은 격려를 해주었다. 그는 그의 고통의 터널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 사랑의 넓고 큰 은혜를 잔잔한 눈길로, 그러나 전혀 잊혀질 수 없는 강렬한 불길로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만약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신다면 온 몸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싶다는 솔직한 바람을 털어놓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늘이 주신 생명에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불꽃처럼 살다갔다.
그 친구의 마지막 병상에서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함께 읽었던 폴 틸리히의 기도 시 ‘네가 용납되었다(You are accepted)’의 구절구절이 주는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큰 위로와 용기를 얻곤 한다. 특히 내가 연약하다 생각될 때마다 이 시를 읽고 용기를 얻는다. 구정을 맞으며 하늘이 주시는 두 번째 기회에 몸을 의지해 살아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은혜는 우리가 큰 고통과 불안 속에 있을 때 불현듯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은혜는 우리가 삶의 무의미와 공허함의 어두운 골짜기를 거닐 때 문득 찾아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다른 생명을 우리 스스로 침해하여 그들과 우리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다고 느껴질 때, 평소보다 더 깊게 우리 생명 사이의 간격을 느낄 때 은혜는 우리에게 덮쳐옵니다. 우리 자신의 존재와 우리의 무관심과,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적개심에 대해 스스로 메스꺼움을 느낄 때나 삶의 방향감각과 침착성을 잃어버려 견딜 수 없을 때, 은혜는 홀연히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해가 지나고 또 지나도 생명의 완전성에 대한 우리의 동경이 실현되지 않고 옛 강박관념이 우리 내면에서 우리를 지배하며, 절망이 우리의 모든 기쁨과 용기를 좌절시켜 버릴 때 은혜는 우리 존재에 부딪쳐 옵니다. 시시때때로 바로 그런 순간에 한 가닥의 빛이 우리들의 어두움 속으로 돌파해 들어오면서 한 음성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너를 용납하신다. 너보다 더 크신 이가 너를 용납하신다. 그 분의 이름을 너는 모른다. 지금은 그 이름을 묻지 말아라. 언젠가 훗날에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무엇을 알려고 애쓰지도 말아라. 훗날에 더 많은 것을 할 것이다. 무엇을 추구하거나 의도하거나 수행하려고도 말라. 다만 너를 용납하신다는 그 사실만을 받아들이라.”
<연세대 신과대학장겸 연합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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