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쓰는 걸까 베끼는 것일까”… 한유주 소설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Է:2012-01-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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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쓰는 걸까 베끼는 것일까”… 한유주 소설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기존 소설 형식을 파괴하는 작품 세계로 2003년 등단과 동시에 평단의 주목을 받아온 소설가 한유주(30). 세 번째 소설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지성사)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다.

수록작 ‘자연사 박물관’엔 독일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1931∼1989)의 단편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줄거리를 빼닮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편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어떤 줄거리인가.

의학도인 화자는 연극이 추잡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표를 구입한다. 하지만 정작 공연일이 되자 극장표를 환불하기로 하고, 극장 앞에서 관람객들을 관찰한다. 그때 여장을 한 낯선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건네며 함께 산책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고는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묻는다. 산책을 마친 여장 남자는 20여 년 전 자신이 한 여자를 살해해 긴 옥살이를 했고, 지금 그 여자의 옷을 입고 다니는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학도가 믿건 말건 극장에서는 ‘희극’이 공연되고 있을 거라고 단정한다. 그렇다면 ‘자연사 박물관’은?

“오전 12시 24분, 결정된 것은 없다. 나는 왼손을 내려다보았고, 왼손 엄지에는 일주일 전 톱날에 베인 자줏빛 상처가 남아 있었는데, 그날,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고, 그 기억을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두 인물 중 하나에 덧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의상, 한 사람을 햄릿, 다른 한 사람을 트리스탄으로 부르기로 한다.”(90쪽 ‘자연사 박물관’)

작품 속 화자는 자신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끊임없이 베끼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소설의 서사를 압도하고 전복시켜버리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 한유주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수록작에 대답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를 베끼지는 마, 너는 너 자신을 쓸 수 있을 거야, 그가 말했다. 아니, 베끼지 않고 무언가를 쓸 수는 없어, 적어도 나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하며 언어를 익혔어, 누군가의 문장을 흉내 내며 글쓰기를 익혔지, 내가 말했다. 그런 면에서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아. 베끼는 것만이 가능하지.”(189쪽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쓴다는 행위, 즉 글쓰기란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는 외부 사태에 대한 주체의 사유를 글을 쓰는 바로 그 시간에 문자라는 형식으로 결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이번 소설집엔 담겨 있다. 글쓰기는 일렁이는 사유의 그림자로, 대리자로, 필경사로 격화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오늘 왕의 입은 고요하고 왕의 필경사는 왕의 명령을 기다린다. 나의 왼손은 왕, 나의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오늘 왕은 피곤하고 왕의 필경사는 제 낯에서 피로를 감춘다. 나의 왼손이 드물게 말하므로 나의 오른손은 드물게 받아쓴다. 나의 오른손이 나의 왼손을 베끼는 동안 왕국은, 몰락의 징후를 드러내거나 혹은 힘겹게 지속된다.”(11쪽 ‘나는 필경…’)

여기에 등장하는 ‘나’는 문법적으로 보자면 1인칭이지만 왕과 필경사라는 이중적 존재로 분리된 비인칭 주어에 가깝다. ‘나’는 ‘나’를 쓰는 것인가, ‘나’를 베끼는 것인가. 한유주는 이렇듯 존재론적 난경(難境)을 보여주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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