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속에 처박힌 도스토옙스키, 그를 환생시키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이병훈/문학동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 그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가장 신랄하게 파헤친 잔인한 천재지만 책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켜켜이 먼지 쌓인 낡은 이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구석에 처박힌 그 이름을 환생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질문을 가슴에 품고 도스토옙스키의 행적을 쫓아 2009년과 2010년 여름에 러시아 대륙을 가로지른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모스크바, 대부분의 작품 활동을 전개한 페테르부르크, 4년간 감옥살이를 한 옴스크, 말년에 가족과 전원생활을 즐긴 스타라야 루사에 이르기까지.
모스크바의 도스토옙스키 생가는 19세기 당시 빈민구제 병원에 딸린 부속건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병원에 근무한 의사였다. 병원은 사생아와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모스크바 보육원에 속한 시설이었다. 그러니 살림은 얼마나 볼품이 없었겠는가. 실제로 도스토옙스키 집안은 가난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첫 작품 제목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은 그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갑자기 나는 혼자 남게 되었고 상황은 끔찍하게 변해버렸습니다. 나의 삶 전체는 두 동강이 나버렸습니다. 오, 친구여, 빚을 갚고 다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다시 기나긴 유형생활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 몽둥이로 두들겨 맞지 않으려면 정신없이 작품을 써나가야만 합니다.”(174쪽)
도스토옙스키가 세미팔라진스크의 은인 브란겔 남작에게 쓴 편지의 일부지만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차라리 유형생활이 더 낫다고 고백했을까. 요즘으로 말하면 각종 카드 빚이 쌓여 파산한 개인이 도스토옙스키였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작가 자신이다. 결국 도스토옙스키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뻬쩨르부르그를 떠나 유럽으로 도주했다. 이것이 그의 세 번째 유럽여행이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도스토옙스키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되었다. ‘죄와 벌’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다.”(175쪽)
이 책이 여타 도스토옙스키 안내서와 다른 점은 저자가 늘 “세상을 떠난 지 130년이 된 러시아 작가의 영혼의 편력 속에서 우리가 부둥켜안고 가야 할 ‘최후의 말’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면서 21세기에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각성한 데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1837년 4월 아버지를 따라 이사한 페테르부르크에서 공병학교에 다녔다. 그가 1838년 6월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엔 연병장에서 치러진 열병식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다섯 번에 걸친 대공과 황제 열병식이 우리를 녹초로 만들었어. 우리는 부대를 교대하면서 승마장에서 기병대와 함께 사열 행진을 하고 기동연습을 했어.”(53쪽)
이런 질식할만한 환경이 도스토옙스키로 하여금 문학으로 빠져들게 한 동인이었던 것이다. 1849년 그는 전제주의 체제에 도전장을 낸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페트로파블롭스크 감옥에 수감됐을 때조차 창작의 열정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 시기에 그는 세 편의 중편 소설과 두 편의 장편 소설을 구상했고 이 가운데 한 편을 탈고했다. 그리고 시베리아의 유형지인 옴스크 감옥으로 이감돼 4년을 지내는 동안 수기 형식의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 대한 구상을 마치고 형에게 편지를 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죽음의 집의 기록’에 대한 완전하고 확실한 계획이 있어. 인쇄 종이로 예닐곱 장 분량이 될 거야. 내 개성은 배제될 거야. 이것은 익명의 사람의 기록이야.”(122쪽)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의 행적을 돌아본 저자는 어떤 구원의 메시지를 발견했을까. 뜻밖에도 그 메시지는 그 먼 길을 돌아 도착한 페테르부르크의 뒷골목을 거닐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물 기둥의 낙서에 적혀 있었다.
“‘뜨이 랍!’ 러시아어로 ‘너는 노예다!’라는 말이다. 내가 노예라니, 우리 모두가 노예라니! 그럼 대체 누가 주인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노예들이었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에필로그에서 ‘아! 이제 모든 것이 변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독백한다. 이 말은 그가 길고도 험한 노예의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삶의 주인으로 태어나 내뱉은 첫 번째 말이다. 그리고 이 독백은 그의 마지막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것이 도스토옙스키의 최후의 말이라고 생각했다.”(8쪽 머리말)
청년 시절,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 태어나는 라스꼴리니꼬프를 보며 삶의 고비를 넘겼다는 저자는 “우리 누구에게나 라스꼴리니꼬프―갈라놓다, 분리하다, 분리주의자라는 뜻이 있다―적인 측면이 있다. 자기 안의 라스꼴리니꼬프를 직시해야만 현대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육체와 정신, 자기와 타자, 개인과 사회, 이상과 현실, 삶과 생존의 뿌리 깊은 ‘분리’를 극복하고 다시금 순수한 생의 에너지를 회복할 열쇠가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책장 구석에 방치된 도스토옙스키를 펼쳐들 때이다. 저자는 아주대 강의교수.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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