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철희 (9) 내 인생의 이정표를 확 바꾼 두번의 사표

Է:2011-10-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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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최철희 (9) 내 인생의 이정표를 확 바꾼 두번의 사표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WEC선교회 이사의 한 사람으로 봉사했다. 영입심사, 이사회, 정기기도회 등 한 달에 서너 번씩 참여했다. 파송 선교사들과 교제를 나누었고 우리 집 일부를 선교관으로 사용해 안식년 선교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내 나이 50이 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교에 대한 부담감을 더해 주셨다. 나중 필요를 위해 장신대 평신도교육대학원 2년을 마쳤다. 아내도 “생선 몸뚱이는 우리가 다 먹고 꽁댕이만 하나님께 드릴거냐”며 결단을 재촉했다. 하지만 내 열정을 다 쏟은 회사,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사장 자리를 아무 때나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04년 한국에서 WEC선교회 국제회의가 열렸을 때 나는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그때 국제부총재였던 트라우고트 부부와 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짓더니 “당신은 선교사가 되어 한국본부에서 일하면 참 좋겠습니다. 저희들이 당신을 위해 매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아직은 아닐거야. 몇 년은 더 기다려야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몇 달 후 회사에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고 나는 사장으로서 책임을 느껴 사직 의사를 밝혔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때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WEC 선교사에 지원했다. 영입심사 위원에서 영입심사를 받는 선교 지원자로 앉았다. 내 삶에 두 번째 획기적인 변화의 때였다.

첫 번째는 삼성 비서실에 사표를 던지고 나의 신앙생활과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때였고 지금은 20여년간 몸담고 일했던 한성기업에 사표를 내고 선교사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나의 선택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온전히 주님의 인도하심과 전적인 주관하심에 내 삶을 맡길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승용차도 회사에 반납했다. 비서도 없었다. 하루는 결혼식이 있어 외출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알았는데 돌아오는 길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잡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택시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그때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와서 멈췄다. 됐구나 싶어 택시 안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그런데 안에서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하는 게 아닌가. 그는 나의 운전기사였다. “어, 자네가 웬일인가?” 나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물었다. “예, 개인택시 하나 사서 이렇게 굴리고 있습니다. 저쪽에서 보니까 사장님 같으신 분이 택시를 잡으려고 뛰어다니시는 것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자네에게 정말 미안하구먼. 나 때문에 자네까지 직장을 그만두게 해서. 그래, 한 달 벌이는 얼마나 되나? 살만은 한가?” “별로 신통치 않습니다만 다른 걸 할 게 있어야죠. 일 없을 때는 책도 볼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나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된 그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그때는 주변 사람들도 헤아려 봐야 할 시간이었다. 내겐 귀한 친구 하나가 있다. 의사로 평생 군의관으로 봉사하고 국군의무사령관을 지내다 예편한 친구였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유난히 강하고 성격도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미국으로 선교훈련을 떠나기 전 그가 우리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떠나는 우리를 보며 도전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굵다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돌이켜보면 그 장군의 눈물 때문에 혹독한 훈련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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