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경제雜說] 명절의 비용과 편익

Է:2011-09-29 19:23
ϱ
ũ
[조준현의 경제雜說] 명절의 비용과 편익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얼마 전에 지났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추석은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었을까? 삼국사기를 보면 추석이 우리 고유의 명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내가 궁금하다는 말은 도대체 언제부터 추석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강릉 단오제는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무형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유네스코에 단오제를 문화유산으로 신청한 비슷한 시기에 중국도 자국의 단오제를 같은 문화유산으로 신청한 일이 있다. 그때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들 것이라고 왜곡한 데 이어 우리의 민속명절까지 훔친다는 분노가 많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유래나 뜻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단오는 우리의 명절인 동시에 중국의 명절이기도 하다. 나도 중국의 인민대학에서 잠시 공부하는 동안, 마침 단오가 되어 학교 식당에서 주는 연잎밥을 먹은 기억이 있다.

어쨌든 단오는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우리의 중요한 명절이다. 그런데 미안하고 죄송스럽게도 요즘에는 단오라고 특별한 의미를 두는 분들을 주변에서 만나 본 일이 없다. 단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식도 그렇고 청명이니 유두니 하는 옛 명절들이 모두 그렇다. 물론 과거에도 단오나 한식이 추석과 설만큼 큰 명절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명절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요즘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설은 기리면서도 단오는 모르고, 추석은 기리면서 한식은 모르는 것일까?

우리의 명절은 대부분 농경사회의 유물이다. 그러다 보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단오나 청명이나 한식 같은 명절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예외적인 게 설과 추석이다. 산업화된 지 오래인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큰 명절로 남아 있다.

조금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설과 추석이, 아니 설과 추석만이 우리 민족의 대명절이 된 이유는 바로 그 국가 주도의 산업화 때문이다. 경제개발 이전 농촌에서 대가족이 함께 지낼 때는 단오나 유두 같은 농경사회의 명절이 중요했었다. 그러나 흔히 박정희 시대라고 부르는 산업화 시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그런 농촌 명절들의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농촌 출신 처녀 총각들, 흔히 공순이 공돌이로 불렸던 그들의 고향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일요일이나 국경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그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라도 한 해 한두 번은 고향에 보내 주어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보내 줄 것인가가 정부와 기업의 고민이었고, 그래서 선택된 것이 추석과 설이었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온갖 명절마다 고향에 보내 줄 수는 없는 일. 취사선택을 하다 보니 설과 추석이 가장 큰 명절로 남은 대신에 단오나 한식은 잊히고 만 것이다. 노동자들 처지에서도 설과 추석이 아니면 부모형제를 만날 수 없으니 이전보다 더욱 큰 명절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그 시절 명절에 기업에서 버스를 대절해 고향에 보내 준 이유도 실은 노동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혹시라도 노동자들이 돌아오지 않거나 다른 회사로 갈까 걱정됐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그때 회사에서 귀향 노동자들에게 빼놓지 않고 한 이야기가 바로 친구 한 명 데려 오면 얼마를 준다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렇게 확고히 자리 잡은 양대 명절에 고향 등지로 이동하는 국민들의 수가 대략 2000만명이라고 한다. 이번 추석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승용차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이 약 10시간이었다는데, 예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 것이 그 정도다. 경험해 본 이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귀향길, 귀성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지인들이 서로 주고받는 인사가 언제 고향에 가시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좀 민망한 것이, 나는 갈 고향이 없다. 공단 개발로 그 주변 마을들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설령 마을이 아직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로 겨우 몇십 분 거리에 불과하니 고향을 가니 어쩌니 하기가 민망한 노릇이다. 그런데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같은 길을 가는 데 한나절이 넘게 걸렸었다. 교통편도 부족하고 도로 사정도 여의치 않던 때의 일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평상시엔 너덧 시간 만에 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에 사는 부모형제를 만나러 가는데 반나절만 해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도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왕복 스무 시간 이상을 도로에 버려 가면서 같은 날에 꼭 명절을 치러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다. 길거리에 버려지는 시간과 비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국 동시다발적 명절이 초래하는 생산성 저하는 물론 더 큰 사회적·국가적 비용이다. 명절이 지나면 생활과 노동의 활력이 더 커지고 생산성도 올라야 할 텐데, 실은 정반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더 힘들고 피곤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온 국민이 저마다 원하는 날에 원하는 방식으로 명절 휴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듯싶다. 오랫동안 해 온 일을 어찌 가볍게 바꿀 수 있겠는가 만은 명절의 비용과 편익을 한 번쯤 따져 볼 때가 됐다.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