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묵 집사가 전하는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 축출은 하나님 역사, 비밀경찰 득실… 사무실서 몰래 예배”
“국민을 돌보기는커녕 미사일을 쏘고 총을 겨누는 사람이 어떻게 국가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가난하고 순박했던 시민을 억누르듯 벵가지 거리에 서 있던 독재자 카다피의 동상과 초상화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전북 익산시 예안교회 이충묵(57) 집사는 1980년대 초반, 리비아의 두 번째 도시 벵가지에서 11개월간 건설노동자로 근무했다. 이씨는 바다와 석유저장시설의 파이프 연결공사를 맡았다. 그는 “제대로 된 여가활동도 할 수 없을 만큼 벵가지 시내는 열악했다. 그러나 바닷가에 위치한 카다피의 별장은 너무나 화려해 대조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카다피는 철저한 억압과 통제로 철권통치를 했다. 이씨는 “비밀경찰들이 너무 많아 한국인 노동자끼리도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예배도 사무실에서 몰래 드려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벵가지에는 교회가 없어서 동료들과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설교는 서울에서 가져온 설교테이프로 대신했다. 리비아 학생들은 공부 대신 군사훈련을 받았다. 여학생도 예외가 없었다. 이 씨는 30년 전 리비아 상황에 대해 ‘통제’ ‘억압’ ‘공포’라는 3가지 단어로 표현했다.
자연환경도 열악했다. ‘마지막’ ‘죽음’이란 뜻의 사막 바람 할라스 때문에 건설현장은 폐쇄되기 일쑤였다. 1m 앞도 안 보이는데다 바람에 돌멩이까지 날아올 정도였다. 한마디로 리비아는 이씨에게 ‘복음의 황무지’였다.
이씨는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20여 개월을 근무하다 85년 11월 건축자재가 무너지는 바람에 반신불수의 1급 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사고는 축복이 됐다. 덤으로 사는 인생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휠체어를 탄 채 익산 원광대병원 등을 다니며 매주 환우 전도를 해오고 있다. 리비아를 위한 기도도 빼먹지 않았다. 그는 “최근 리비아 사태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면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카다피를 축출해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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