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

Է:2011-07-2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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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伏)날의 단상(斷想)



사람들이 맨 처음 길렀던 짐승은 돼지다. 본시 인간이란 네 발로 달리는 짐승처럼 강한 것도 아니고 날개가 있는 새처럼 빠르지도 않다. 그러니 소리 없이 달려드는 뱀이나 독충류의 독을 막을 만한 그 무엇도 지니지 못했다. 궁리 끝에 나무를 휘고 얽어 집을 만들고 그 아래 칸에 돼지를 잡아다 길렀다. 돼지란 어떤 독충도 다 잡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뜻하는 가(家)자에는 집이란 뜻의 ‘갓머리’(?) 밑에 돼지를 형상화한 ‘시’(豕)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맨 처음 신께 드렸던 짐승은 개(犬)였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기겁을 할 노릇이나 우리 문자는 그렇게 전하고 있다. 교회마다 ‘헌금’이라는 게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돈이 ‘獻金’이고, 그것이 물건일 때 헌물(獻物)이라고 하고, 자신을 직접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헌신(獻身)이라고 한다. 그럴 때 그 ‘드린다’의 ‘헌’이라는 한자 ‘헌(獻)에 바로 개(犬)가 붙어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이랴! 유태인’(猶太人)이라고 한자로 쓸 때 그 ‘유’(猶)에는 ‘커다란 개’란 의미로 ‘견’(?)이 붙는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양(羊)이거나 비둘기를 희생 제물로 바쳤다고 하지만, 더 오래된 그들의 과거엔 개였다는 뜻이다. 여하튼, 개(犬)는 어떤 민족이 지닌 문화 원류의 중심이며, 신앙의 원형에 이르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은 개(犬)를 잡숫거나, 받으시거나, 원하지 않으신다. 아니, 그렇다고들 믿고 있다. 오늘날 이것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그것도 육체적인 에너지의 증대를 필요로 하거나, 그것을 희망하는 사람들, 기호식품화한 이들이 즐겨 드신다(獻).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신의의 표시로 받으시던, 그래서 민족의 이름조차 그렇게 지었던 그 개(犬)를 몇몇의 애호가들이 독점하고 있고, 반대로 혐오스러운 음식이라는 선동에 속아 멀리하고 있다. 즐겨 먹든, 혐오스럽게 여기든 인류는 과거의 정신문화인 ‘드릴 헌’(獻)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주일(24일)이 중복(中伏)이란다. 교회의 장로들이 이 날 목사들과 함께 서면의 소양강가에서 삼계탕으로 복 놀이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제 아침에 집에서 기르던 댕견(꼬리 없는 토종 개)이가 집을 나갔다. 고삐가 삭았던 거다. 하루 종일, 집 나간 아이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밤에도 문을 열어두고 개집을 쳐다보곤 했다. 별별 마음이 다 들었다. ‘그동안 갇혀 있었는데 며칠이라도 자유하게 살아라’ 하는 마음도 있었고, ‘건강한 수놈인데 어디 가서 좋은 씨나 잘 퍼뜨려라’ 하기도 했고, ‘자식! 주는 밥 꼭꼭 챙겨 먹던 부유함을 네가 아느냐’ 하기도 했고, ‘내가 중복 날 삼계탕 먹는 사이 댕견이는 또 누군가의 복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는구나’ 했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지난 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집 밖으로 나갔다. 담장 너머 군인장교들 숙소에서 군인 두 명이 개 한 마리를 어르고 있었다. 대뜸 내가 기르던 ‘댕견’인 줄 알았다. “야 임마!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이 고함에 군인들이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주인이 없는 갠 줄 알았다나!

엊그제, 힐끔 나를 보곤 마을 안쪽으로 달아나던 녀석이 목덜미를 척 나에게 내민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마에, 다리에, 입 가장자리에 핏자국이 있는 걸로 보아 다른 개들과 싸웠거나, 붙잡아 매여서 그걸 끊으려고 애썼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식은 밥 덩어리에 참치 한 통을 섞어 줬더니 두어 번 만에 핥아서 먹어 치웠다. 반갑고 측은하고 밉기도 한, 축 늘어져 있는 개를 한참 동안 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던 네가, 유태인의 이름에까지 오른 네가, 오늘날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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