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골프 95호...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성경과 골프 95호...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필리핀 세부 섬 북단 M골프장은 한국인 콘도가 들어서면서 다시 살아난 평범하고 아담한 곳이다. 열대지방임에도 시원한 바닷바람 덕분에 쾌적한 라운드를 아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 내가 수시로 방문하는 단골 골프장이다. N신용보험 S사장은 나의 골프 문하생을 자청하는 준싱글 핸디캐퍼로 여러 해 동안 매년 한 번 정도는 나에게 전지훈련을 받았는데 평균 260야드의 통쾌한 장타 드라이빙에도 불구하고 70대 스코어를 기록하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던 중 연휴를 맞아 나의 세부 여행에 동참하였다.

15번 홀은 330야드 파 4, 우측으로 꺾인 도그레그 홀이다. 쉬운 레이아웃이지만 이 홀은 아주 다양한 스코어를 만들어 내는 재미있는 홀이다. 항상 세자리 숫자를 치는 내 아내는 이 홀에서 거리가 짧다는 이유로 항상 직선 최단 거리를 선호한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펄럭이는 깃발이 이 홀이 도그레그 홀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게 만든다. 핀을 향해 날리는 티샷은 조금만 우측으로 밀리면 여지없이 해저드 늪으로 들어가고 만다. 열이면 대여섯 번을 해저드로 티샷을 날리고도 언제나 또 같은 실수를 하게 만드니 내 아내에게는 마의 15번 홀이기도 하다.

장타자의 경우라면 잘 맞은 직선 타구가 카트 도로에라도 떨어져 튀어서 그린 앞 크리크에 빠지기도 하지만, 늘 전략적으로 안전하게 치는 나는 아주 쉽게 파를 잡는 홀이다. 무리하지 않고 좌중간에 안전한 티샷을 쳐 놓으면 세컨 샷은 웨지로 풀스윙하니 그린 우측이 벙커이고 다른 3면이 모두 해저드이며 경사가 심한 위협적인 그린이라 해도 높은 탄도의 샷으로 그린 중앙을 쉽게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스코어를 유지하다가 14번 230야드의 파3홀에서 짧은 퍼트를 놓치고 안타까워했던 S사장은 15번홀 티샷이 왼쪽으로 훅이 나며 야자수 숲으로 들어갔다. 핀으로는 직선 공격이 불가능하고 최선의 방법은 그린 앞 크리크까지 레이업하여 40야드 전후 어프로치를 하거나 페어웨이 중앙으로 빼내서 90야드의 샷을 하는 선택이 남았다. 그린 앞까지 전진할 수 없는 위치이기에 통상 페어웨이 중앙으로 레이업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나는 생각했는데, S사장의 볼은 탄도 높게 날더니 야자수 잎 줄기 홈에 걸려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페어웨이 중앙으로 레이업을 했고, 그 다음 샷은 겨우 그린 에지에 올라 2퍼트 함으로써 트리플 보기를 하였다. 정말로 보기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99% 보기를 할 수 있었는데, 터무니 없이 허물어져 트리플보기를 하고 그날 싱글 스코어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중간하게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조금이라도 그린에 가까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대충 샷을 했는데 궁금해서 헤드업까지 하다 보니 볼이 정확하게 맞지도 않고, 야자수 잎 줄기에 걸려 아까운 새 볼 하나 잃어버리고 2타나 손해 보게 되었네요. 타자가 주자를 보내기 위해 번트를 대면서 자기도 살겠다고 하다가 타자와 주자 모두 다 아웃 된 것이나 같지요. 제가 싱글 핸디캐퍼가 못 되는 중요한 이유 하나를 오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S사장의 고백이었다.

“레이업은 트러블에서 빠져 나오는 아주 중요한 한 타인데, 무조건 확실하고 안전하게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일세. 그것이 숲속이든, 해저드 구역이든, 깊은 벙커 속이든 일단은 지금 이 샷은 다음 샷을 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만 보내면 되는 것일세.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 샷을 하기 전에 생각하면 되니까 그 야쟈수 아래에서는 일단 낮은 탄도로 안전하게 페어웨이 중간으로 나왔어야 했고 그랬다면 쉬운 어프로치 풀스윙으로 파를 잡는 행운이 연결되었을지도 모르네.” 나의 의견을 들려 주었다.

이틀 후 S사장은 두 번의 트러블 상황이 있었지만 차분하게 빠져 나와 +5의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했다. 야자수에 심은 볼이 라이프 베스트의 열매를 맺은 셈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 17:33)

골프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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