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굴까, 그분!… 교회 밖 기독교 언어의 가벼움

Է:2011-06-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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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굴까, 그분!… 교회 밖 기독교 언어의 가벼움

쇼핑몰 운영자인 20대 여성이 1억5000만원짜리 포르쉐 승용차를 사는 모습이 최근 케이블 방송에 나왔다. 그는 1000만원어치 명품 의류도 사들였다. 인터넷에선 ‘그분이 제대로 오셨다’고 술렁댔다.

여자 이종격투기 선수 함서희는 지난 2월 “이번 경기에 그분이 오셨다. 경기가 잘 풀릴 때 오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열린 격투기 대회에서 현지 선수에게 3대 0 판정승을 거둔 뒤였다.

지난해 11월 롯데 2군과의 연습경기를 마친 추신수는 “이제 곧 그분이 오실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3월 한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는 연기자 이요원이 “시대극은 특별한 준비 없이도 그 옷을 입으면 ‘그분’이 오셔서 그 사람인 양 연기하는데”라며 ‘그분’을 거론했다. ‘그분’은 대체 누구인가.

그분의 정체

함서희는 “경기가 잘 풀릴 때마다 다른 사람이 씐 것 같아 ‘그분이 오셨다’는 표현을 쓴다”고 설명했다. ‘그분’은 자신도 놀랄 만한 실력을 뜻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자화자찬을 피한 겸손의 표현이다. 추신수의 ‘그분’은 타격 감각, 이요원의 ‘그분’은 배역 몰입쯤 된다. 통 큰 쇼핑몰 운영자의 ‘그분’은? 아마 ‘지름신’(충동구매를 부추기는 가상의 신)이라고 젊은 사람들은 입을 모을 것이다.

‘그분이 오셨다’는 유행어다. 세간에선 거의 우스개로 활용된다. 2009년 초까지 방영한 일일 시트콤의 제목이 ‘그분이 오신다’였고, 지난 5월 개봉한 만화영화 ‘쿵푸팬더2’의 홍보 문구가 ‘그분이 돌아오셨다’였다. 한 게임 업체는 지난해 8월 ‘그분이 오셨다’는 제목의 휴대전화용 게임을 개시했다. 이 게임의 소개말은 요즘 ‘그분’의 이미지를 요약한다. ‘정체불명의 유쾌하고 코믹한 그분이 오셨다!’

이런 쓰임에서 ‘그분’은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다. 암시할 뿐이다. 인구에 회자되거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정체를 규정하기 어려워서 ‘그분’이고, 몇 마디로 설명하기 벅차서 ‘그분’이다. 어감은 경외심에 가깝다. 유행어 ‘그분이 오셨다’에선 그 의미가 뒤틀려 장난스럽게 들린다.

‘그분이 오시다’식 표현은 종교색이 짙다. 기독교에서 오래 써온 말이기도 하다. ‘그분이 (찾아) 오셨다’ ‘그분이 오실 날을 예비하라’는 활용이 일반적이다. ‘그분’은 하나님이다. 일체인 삼위(三位)를 구별하면 오신 ‘그분’은 성령이고, 오실 ‘그분’은 성자인 재림 예수다. 1890년 지어진 찬송가 ‘이 기쁜 소식을’의 후렴은 ‘성령이 오셨네/성령이 오셨네/내 주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로 반복된다.

할렐루야와 아멘

유행어 ‘그분이 오셨다’가 기독교에서 비롯됐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 민속신앙의 신내림도 같은 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모호한 앞뒤 관계만큼이나 기독교의 ‘그분이 오셨다’는 말이 교회 밖에서 제 의미를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언어를 매개로 종교와 한국 사회의 관계가 읽히는 대목이다.

괴로울 때 기독교인은 “주여”하고 탄식한다. 도와 달라는 뜻이다. 요즘은 교회를 안 다녀도 “주여”하는 사람이 있다. 대개 농담조다. 속뜻이 다르다. ‘에이그’ ‘참나’ 같은 말이다. 술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자/따르자’라는 말이 ‘술 마시자’는 의미로 쓰인 지는 오래다. 주님의 주(主)가 술 주(酒)와 똑같이 발음되는 점을 이용한 우스개다. 빈정거림이 깔려 있다. 기독교는 음주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아멘은 각각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렇게 될 줄 믿는다’라는 히브리어다. 대개 같이 쓰인다. 한 쪽이 “할렐루야”하면 다른 쪽은 “아멘” 한다. 이 말들도 교회 밖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한창 이야기하다 말발이 서면 “할렐루야”하고, 설득력 있는 농담을 들으면 “아멘” 한다. 이때 할렐루야는 ‘아싸’ 같은 감탄사다. 아멘은 “네 말 맞다” 정도의 대꾸인데 어떤 믿음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다.

기독교 언어가 세속화하는 경향은 강해지고 있다. 종교적 특수성이 사라지고 일반 용어로 재정립되는 양상이다. 역할→사명, 기대→소망, 반성→회개 등으로 바꿔 쓰는 경향에서 두드러진다. 우스개로 전용되는 말은 적지 않다. ‘주여’ ‘할렐루야’ ‘아멘’을 추임새로 활용하는 현상이 일례다. 시쳇말 ‘방언 터졌다(수다스럽다·재밌게 말한다)’ ‘그분이 오셨다’는 기독교 신앙 체험을 빗댄 농담이다.

세속화의 법칙

안팎의 문화를 가르는 종교의 벽은 철벽이 아니다. 종교와 사회가 자주 접촉하면 경계는 허물어진다. 세속 문화가 교회로 들어가듯 교회 문화가 세간으로 나온다. 가장 빨리 흡수되는 게 ‘말’이다.

불교의 전례가 있다. 불교 용어는 약 1700년간 민간에 스며들었다. 금강산 문수산 미륵산 같은 지명에서 두드러진다. 각오 건달 대중 야단법석 횡설수설 등 일상 용어도 허다하다. ‘할렐루야’ ‘아멘’이 우스개로 쓰이는 모습은 사실 낯설 게 없다. 아이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장난삼아 외는 것과 같다.

개신교가 전래된 지 126년째. 기독교 언어 세속화는 이 시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언어학자들의 견해다. ‘빛과 소금’ ‘밀알’ ‘일용할 양식’ ‘십자가를 지다’ 등 이미 적잖은 성경적 비유가 교회 밖에서 통용돼 왔다. 지금은 간증 구원 소망 같은 신자들의 일상 용어가 확산되는 단계다.

종교 언어 차용은 스스로 위안받으려는 욕구의 표출이라는 설명이 있다. 현대인의 불안심리에 주목한 해석이다. 종교성이 부각되는 말은 죄의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반성’보다는 ‘참회’, ‘고백’보다는 ‘간증’, ‘잘못’보다는 ‘죄’ 같은 말이 화자에게 위로를 준다는 것이다.

기독교 언어는 개척 초기 영역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로움, 도전할 만한 권위 등이 젊은 세대의 구미를 당긴다. 이들에게 기독교 언어는 여러 감정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재료다. 종교색이 강할수록 희화된다. 일상에 갖다 쓰려고 신성함을 제거하는 작업인 셈이다. 기독교 언어의 세속화는 서구 사고방식과 민간신앙의 토대 사이에서 진행된다. 말들이 쉽게 유입되지만 의미는 어긋나는 원인이다.

양날의 칼

종교 언어는 세속화 과정에서 말의 껍데기만 남을 공산이 크다. 다른 의미로 고착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불교의 야단법석(야외에서 설법을 듣는 자리)과 횡설수설(불경에 통달한 경지)은 본래 의미를 벗어나 부정적 어휘가 됐다. 찰나나 억겁은 사상적 배경이 사라지고 시간의 길고 짧음만 표현한다.

막말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기독교 언어의 세속화 과정에서 영어가 겪은 일이다. ‘Oh, my God’은 ‘주여’ 같은 말이지만 현재 ‘아이고’쯤으로 쓰인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총에 맞았을 때 부인 재클린이 뱉은 말로 유명하다. ‘God damn’(하나님 맙소사)은 ‘제길’ ‘젠장’ 같은 뜻으로 굳어졌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언어에 무속 개념이 섞이는 일이 잦다. 기독교에서 귀신은 사람의 혼령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귀신이 그렇게 이해된다. 교회 밖에서 이런 구분은 더욱 모호해진다. ‘그분이 오셨다’로 표현되는 성령 임재와 귀신 강림을 혼동하듯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말이든 정착 과정에서 의미를 바로 잡지 않으면 변질이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어학자인 최래옥 전 한양대 교수는 “본래 의미가 사라지고 잘못된 뜻만 남으면 계속 오용될 수 있다”며 “교회는 기독교 언어의 본질을 올바로 전해서 건전한 사고방식이 정립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독교 언어가 희화되는 상황이라는 점에 교회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비판론이 높다는 방증이다.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교회가 언행에 주의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기독교 언어가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지 결정되는 단계”라며 “기독교인은 언행에 신중을 기하고 특별한 말은 꼭 필요한 때 의미를 정확히 살려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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