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달구벌 의료-교육-선교 100년을 잇다
(14)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내가 네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은상의 가사에 동료 교사였던 박태준이 곡을 붙인 우리 가곡 ‘동무생각’이다. 박태준은 대구 계성학교 학생 시절, 신명학교 여학생을 사랑했고 훗날 이은상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쓴다. 담쟁이넝쿨이 덮여 있는 언덕이란 뜻이다. 이 언덕은 대구 근대화의 빛이 태동한 곳이며 지난 100여년간 이 지역의 역사와 함께 호흡해 온 유구한 시간이 녹아 있는 곳이다. 당시의 숨결을 느끼고자 계명대 동산의료원 이영준 홍보팀장과 기자가 지난 5일 청라언덕에 올라보았다.
근대화의 역사가 시작된 ‘청라언덕’
“이 언덕은 자그마하지만 대구에서는 하나의 성지입니다. 이 언덕에서 선교사들은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병원을 세우고 전도하기 위해 울며 기도했고 교육을 해냈습니다.”
이 팀장의 설명이다. 대구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1893년 4월. 미국 북장로교 소속 베어드 목사가 서경조 전도사와 함께 경상도 북부를 전도여행하면서 영남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1896년 남문안에 선교기지인 대구전도부 땅을 구매했다. 이어 베어드 목사가 서울로 발령이 나 처남인 아담스 선교사에게 인계했다. 아담스 선교사는 약전골목에 남문안교회(구 제일교회)를 창립했다. 이어 두 번째로 부임한 존슨 선교사는 대구지방에 ‘미국약방’이란 이름으로 처음에는 약만 나눠줬다. 1899년 제일교회 구내에 ‘제중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치료활동을 시작했다. 이 약방과 제중원이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전신이다. 이것이 대구 근대 의료사의 시작이었다.
제일교회 옆으로 옛 읍성이 있었다. 읍성 담 근처에서 선교사들은 선교 활동도, 교회와 제중원도 시작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3S’에 시달렸다고 한다. 첫 번째가 소리(sound). 선교사들은 굿하는 소리가 제일 싫었다. 두 번째는 냄새(smell). 배수시설이 잘 안 돼 냄새가 심했다. 세 번째는 연기(smoke). 옛날에는 생나무를 갖다 때 연기가 많이 났다. 선교사들은 이 지역은 조금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읍성을 벗어나길 원했다. 당시 청라언덕은 공동묘지였지만 선교사들은 이 언덕을 선택했다. 그들은 이 땅을 예비된 땅이라고 생각했다.
1903년 병원을 현재의 동산동으로 이전하고 선교사 사택,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성경학원(영남신학대의 전신) 제일교회 등을 설립했다. 이 시기에 세워진 10채의 선교사 사택과 건물들은 오랜 세월 서양문화를 보급하는 중심지가 되었으며 대구의 시온산 또는 여호와이레(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사로 바치던 곳)라고 불렸다.
한국전통과 서구문물이 조화를 이루는 곳 ‘의료선교박물관’
동산의료원 남문을 통과해 봉긋이 솟은 구름다리를 지나니 2층 벽돌집 3채가 서 있다. 10채의 선교사 사택 중 학교에 있던 7채는 없어지고 병원에 딸린 3채만 남았다. 동산의료원은 개원 100주년을 맞이한 1999년, 선교사 사택 3채를 의료선교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한 세기의 의료·선교·교육·문화·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들을 전시, 대구 지역 근대화의 발자취를 전해주고 있다.
20세기 초 이 언덕에 세워진 선교사들의 고풍스런 집들은 조선사람들이 ‘여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감탄했을 만큼 건축양식이 아름답다. 집들은 각기 495㎡(150평) 규모이다. 특히 선교박물관은 기와지붕에 붉은 벽돌로 만들어 한국전통과 서구문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건물들은 선교사들이 대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1906년부터 1910년경,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었다.
선교박물관(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은 마르타 스윗츠(1880∼1929) 선교사의 사택이다. 그는 1911년 내한, 독신으로 대구여자성경학교 교사 및 교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과 여전도회 조직에 열정을 쏟았다. 이 사택은 1906년 허문 대구 읍성의 돌을 주춧돌로 사용해 문화재로서 더 큰 의미가 있다. 1층에는 개신교회사에 관한 사진 자료와 선교 유물, 2층에는 구약과 신약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의료박물관(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은 챔니스(차미수) 목사의 집이다. 48년부터 93년에는 병원장인 마펫 선교사가 거주했었다. 특히 의료박물관 사료 34점이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의료분야 목록화 조사’에 등재돼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다.
교육·역사박물관(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6호)에는 블레어 목사가 살았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 서당과 60∼70년대 초등학교 교실이 재현되어 있고, 시대별 교과서 및 민속자료도 볼 수 있다. 또 대구 3·1운동 관련 자료 및 사진이 전시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박물관 주변에는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가져온 사과나무 자손목, 대구3·1운동길, 은혜정원(선교사 묘지) 등이 있다.
의료선교박물관은 현재 월 1000여명의 관람객이 찾는 명승지로 자리 잡았으며 2007년 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잘 가꾼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dsmc.or.kr·053-250-7100).
대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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