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전 37연패 탈출시킨 박기원 배구대표팀 감독 “2012년 런던올림픽 도전하겠다”
2011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 대륙간라운드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7일. 박기원(60) 남자배구대표팀 감독의 주름살은 깊어 보였다. 문성민, 박철우, 김요한, 김학민 등 배구 대표팀 주축을 이루는 선수들이 줄 부상을 당해 ‘차·포를 뗀 상황’에서 쿠바(세계랭킹 4위), 프랑스(6위), 이탈리아(12위) 등 강호들을 줄줄이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엔트리 중 일부를 바꾸려고 했지만 국제배구연맹(FIVB)이 난색을 표해 차·포 뗀 상황에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박 감독은 “주전들이 풀로 뛸 경우를 전제로 4승을 목표로 삼았지만 어려울 것 같다”며 “내년 올림픽 예선전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에 맞춰 빠른 배구를 준비하는 단계로 삼겠다”고 목표를 낮춰 잡았다.
하지만 막상 개막전 뚜껑을 연 지난 28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승리의 V자를 그린 것은 박 감독이었다. 배구대표팀은 D조 1차전에서 쿠바를 3대 0(25-20 29-27 25-18)으로 잡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 전까지 배구대표팀은 쿠바에 37연패 중이었다. 대표팀은 1984년 NHK배에서 쿠바에 3대 2로 승리한 이후 27년 동안 승이 없었다. 대표팀 최종 엔트리 13명 중 8명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대표팀은 쿠바에 지고 있었다.
비록 다음날 2차전에서 1대 3으로 역전패하며 이변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분명 뜻밖의 결과였다. 지난해 대표팀이 대륙간라운드에서 12전 전패로 체면을 구긴 것을 감안하면 이미 지난해 성적을 뛰어넘은 셈이다.
대표팀이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박 감독이 기치로 내건 ‘빠른 배구’가 먹혀든 때문으로 볼 수 있다. 3주 정도밖에 연습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빠른 배구의 위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박 감독은 한국 배구가 세계적 흐름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빠른 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때 월드리그 등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던 한국의 성적이 급격히 떨어진 건 빠른 배구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빠른 배구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있지만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다고 너무 안전하게 가면 현재 실력을 넘어서지 못해요.”
빠른 배구는 세터의 빠른 토스에 이어 공격수들이 약속된 플레이를 펼쳐 상대 블로킹 벽이 자리 잡기 전에 공격을 완성해야 한다. 공격수들이 세터가 토스를 올려주는 것을 보고 반응하면 이미 늦을 정도로 반복된 연습을 통해 약속된 플레이를 펼쳐야 성공할 수 있다. 그간 세계적 흐름에서 다소 처지며 속도가 떨어졌던 배구대표팀은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일본에 충격패를 당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는 아픔을 맛봤다. 석진욱이 부상으로 빠지며 경기가 기울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우리가 유럽이나 남미 팀을 상대로 할 때 블로커 두 명을 앞에 두고 공격을 하면 성공률이 40%를 넘기기 힘들어요. 그런 상황에서 결과는 나와 있다고 봐야죠.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률을 50%까지 끌어올리려면 빠른 배구로 갈 수밖에 없어요.”
박 감독은 대표팀에서 먼저 성적을 낼 경우 프로에서도 빠른 배구가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표팀 실력의 바탕이 되는 프로 무대에서 빠른 배구가 활성화되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야구를 보면 대표팀 성적이 자국 리그 활성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어요. 대표팀에서 먼저 실험해본 다음 프로 리그에서도 장점을 흡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했던 박 감독은 배구가 프로화 된 이후 한국 선수들의 프로 의식이 많이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이전에 비해 술을 마시는 선수들도 거의 없고 몸 관리도 철저한 편이라고 칭찬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율적인 훈련이나 프로의식은 유럽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선수들의 경우 경기 중 어떤 플레이가 잘 되지 않으면 잠깐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알아서 그에 대한 연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감독들이 지적하면 훈련이 끝난 후에도 자율적으로 남아서 개인 훈련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최근에 터키리그 진출을 확정한 여자 대표팀 주포 김연경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터키에서 김연경의 볼 점유율이 이전보다는 낮아질 거예요. 서브리시브도 되는 선수이다 보니 김연경 정도 수준이면 자기 역할을 다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선수 시절 올림픽 무대를 두 번 경험한 박 감독은 지도자로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무대를 밟는 것이 배구 인생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월드리그 이후 9월 아시아선수권 대회와 12월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구상을 완성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감독으로서 올림픽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내 나름대로 배구 인생의 그림을 그려놨었는데 그 간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채워야 할 부분을 내년 런던으로 잡아놨어요.”
수원=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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