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되는 국립극단 ‘키친’… 부엌 안 바쁜 풍경, 현대인의 삶 이야기 하다
“생각해봐, 네가 가도, 내가 가도, 드미트리가 가도, 이 부엌은 여기 그대로 있어. 우리가 죽어도 이 부엌은 남아. 생각해 보라니까. 우리가 여기서 일하지, 하루 여덟 시간. (중략) 너한테 이 부엌은 아무 의미가 없어. 너도, 이 부엌한테 아무 의미가 없어. 드미트리 말이 맞아. 이 부엌에 대해서 불평 해봐야 무슨 소용 있어? 사무실, 공장이면 뭐가 달라?”
국립극단이 지난 18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 ‘키친’의 주인공 피터의 대사는 부엌으로 상징되는 현대적 삶의 터전에 대한 은유다. ‘키친’을 찾은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차갑게 빛나는 다양한 주방 도구들의 은색에 우선 압도된다.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하거나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치고 진짜 음식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사도 속사포처럼 난무하지만 뚜렷한 스토리라인은 없다.
화려한 무대, 군무(群舞)와도 같은 배우들의 움직임. 그러나 이면엔 텅 빈 여백이 자리잡고 있다. 여백을 메우는 몫은 전적으로 관객에게 있을 수밖에. 결국 ‘키친’은 자신의 생각을 지운 채 수동적이고 편한 관람을 하고 싶어하는 이에겐 추천할 수 없는 연극이다.
이 연극의 배경은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영국이다. 1500명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주방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일터일 뿐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다. 극의 시작부터 주방은 빠른 템포로 움직인다. 눈코 뜰 새 없는, 한눈이라도 조금 팔면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 같은, 그 와중에도 연애와 치근거림의 불쾌감이 여름날 땀띠처럼 들러붙은 공간이다. 구성원 모두에게 기계의 부품이 되길 요구하고, 한계를 넘는 인내를 전제하며 가까스로 유지되던 주방은 결국 냄비가 끓어 넘치듯 균형을 잃어버리고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대본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속도의 변화가 단계별로 규정돼 있는데, 속도는 곧 갈등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 섞인 풍자이기도 하다. 무대는 문자 그대로 ‘공장이기도 하고 사무실이기도 한’ 삭막한 풍경이다. 거기에는 돈으로 종업원들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장이 있고, 친구 하나를 갖는 게 소원인 요리사가 있으며, 그 비인간성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주인공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 중 누가 없어지더라도 ‘거기 그대로 있는’ 시스템에 대한 인간적 절망감이 극 내내 도사린다. 관객들은 바위와 맞부딪치는 달걀 같은 심정의 등장인물들을 무겁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무서운 건 벽이 있다는 거야. 큰 벽이…. (중략) 수백만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거야. 도대체 이 벽의 끝은 어딜까? 어떻게 해야 될까? 내 주위를 둘러보면, 부엌, 공장, 수많은 사무실이 들어있는 거대한 빌딩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그러고 생각해 보면, 맙소사! 응?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흘러넘치는 건 넋두리로밖에 기능할 수 없는, 극의 흐름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대사들이다.
한국 상황에 맞게 조금 손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독일인 요리사에 대한 영국인들의 악감정이라든지 아일랜드나 키프로스인들의 정서, 때때로 등장하는 독일어 대사들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창직 이정미 이갑선 계미경 한갑수 안순동 등 출연. 국립극단 이병훈 상임연출가 연출로 한국에서는 초연이다. 공연은 다음달 12일까지 계속된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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