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오빠의 전쟁
경북 왜관의 미군 부대에 묻었다는 고엽제가 뜨거운 감자다. 공식적으로 종료를 선포한 전쟁은 늘 과거완료형 취급을 받지만, 관련된 사람들의 다친 몸과 마음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이다. 베트남전쟁에 사용됐던 고엽제가 왜관이라는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또 다른 후유증을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이 상처를 자기 식으로 삭혀내면 깊은 울림을 가진 작품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에 얽힌 개인사를 40년 만에 사진 작업으로 풀어낸 제시카 하인즈의 ‘오빠의 전쟁’이라는 작업 또한 전쟁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집요하게 개입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제시카의 오빠인 개리는 1967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부모님이 모두 몸져누워 있는 젊은 가장으로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린 나이였던 제시카는 돌볼 사람이 없어 친척집에 맡겨졌다. 오빠가 최전방에서 보내오는 편지와 엽서에는 듬직한 병사의 경험담만 가득했다. 그러던 오빠가 1969년 말 갑작스럽게 전역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나중에야 알았다. 미국 재향군인관리국 통계에 따르면 참전 군인의 절반이 어떤 형태로든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았다. 오빠는 참전하기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10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과의 전쟁을 끝냈다.
그것은 제시카에게 또 다른 전쟁을 의미했다. 건강하고 믿음직스럽던 유년시절의 오빠에 대한 기억은 제시카가 성인이 될수록 더욱 선명한 상처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의 유품 속에서 전우들의 연락처를 발견했고, 끈질긴 추적 끝에 몇 명과 연락이 닿았다.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 전쟁에 대한 전우들의 회상과 오빠가 남긴 사진과 편지를 안내서 삼아 결국 제시카는 오빠의 흔적을 찾아 베트남으로 떠난다. 그 과정에서 오빠가 베트남 여인과 사랑을 싹 틔웠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아냈다. 오빠와 연인의 추억이 어린 장소, 배치됐던 전쟁터, 지금 묻혀 있는 워싱턴 국립묘지까지의 여정은 한편의 로드무비이자 상처 입은 영혼에 대한 서사시로 다시 태어났다.
전쟁에도 유행이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베트남전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밀려 잊혀진 전쟁이 된 지 오래다. 에디 아담스의 베트공 총살 장면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몇몇 베트남전쟁 사진이 이 전쟁의 화석화에 오히려 일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전쟁사진은 베트남전쟁 때보다 훨씬 더 스펙터클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을 자극해 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히려 제시카 하이즈의 ‘오빠의 전쟁’은 전쟁에 얽힌 개인의 무기력함과 슬픔을 보다 보편적으로 접근하게 만든다. 프랑스 ‘르몽드’ 등에서 비중 있게 다룬 이 작품은 조만간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전쟁의 상처는 영원히 봉인할 수가 없다.
<사진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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