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인생에 대한 예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황혼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 제목이다. 성격이 까칠한 만석은 웃을 때마다 미소가 예쁜 송씨를 만난다. 한글을 모르는 송씨를 ‘송이뿐’이란 이름도 지어준다. 그는 그림으로 편지를 쓰고, 그녀의 창에 작은 돌을 던져 그녀를 불러낸다. 만석을 좋아하는 송이뿐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려워 고향으로 떠난다.
만석은 결국 생을 마감하며 그의 낡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송이뿐을 태우는 꿈을 꾸며 눈을 감는다. 또 하나의 커플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늘 눈물 젖은 눈으로 지켜보는 남자가 있다. 그는 아내에게 묻는다. “당신 덕분에 이 세상에서 잘살았어. 다음 생도 당신과 하고 싶어. 당신은?”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당신에게 받기만 하고 살아왔는데 다음 생에 어떻게 또….” 별과 달과 꽃을 그리며 종이배를 접는 아내를 그는 결국 혼자 보내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 머지않아 올 나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흐르다 문득 가슴이 서늘해져 왔다. 엔딩 자막이 오르자 관객들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다들 부모님을 생각하거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손을 말없이 꼭 쥐어 봤을 것이다. 사람의 모습은 세월 따라 주름지게 만들었는데 사랑하는 마음은 이십대든 육십대든 변하지 않게 만들어놓은 신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9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운 아내를 보살피는 친구가 있다. 만나기만 하면 그는 늘 사랑이 뭐냐는 인류 이래 끝없는 물음을 제기한다. 기억상실에 빠진 그의 아내는 듣지도, 보지도, 걷지도 못해 내로라하는 병원에서 두 손을 들었다. 그런 그가 남의 결혼식에 가서 중년의 나이답잖게 눈물을 흩뿌린다.
‘신랑은 즐거우나 괴로우나 신부를 사랑하겠는가?’ 하는 성혼 서약이 신랑이 아닌 그에게 화살촉처럼 박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친정어머니도,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직 남편만 알아본다는 거였다. 의학적 전문 지식으로도 풀어낼 수 없는 불가사의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잘나지 못한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아내의 핏기 없는 얼굴을 대할 때마다 그는 ‘사랑은 계약이야’ 하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래도 그는 아내의 죽음을 염려한다. 아이들의 선생님이 “너의 어머니 뭘 하시니?” 하고 물었을 때 “집에 없어요” 하고 고개를 수그릴 걸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10여년의 세월을 남편 얼굴 하나만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아내는 죽을 수가 없다. 아직도 어머니의 자리가, 아내의 자리가 비어있지 않다는 것만으로 그는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간다. ‘저러다가 죽을까봐 걱정이야’ 혼잣말처럼 하고 돌아서는 그의 등을 바라볼 때면 나는 눈앞에 부연 안개가 서린다.
수없이 헤어지는 교차로에서 반사경 속의 색종이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사람들. 잠깐 손을 들었다 그대로 잊고 마는 분망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즈음.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 침몰하는 배에서 보트 위에 먼저 태울 사람을 가진다는 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조미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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