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오디션 프로그램의 함정

Է:2011-05-2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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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손수호] 오디션 프로그램의 함정

매주 금요일 밤이면 난리다. 오디션 예능 프로 ‘위대한 탄생’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살인 미소를 자랑하던 셰인이 떨어졌다. 남은 사람은 이태권과 백청강. 다음주엔 둘 가운데 한 명을 챔피언으로 뽑고 막을 내린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임에 분명하지만 6주 연속 그들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일요일 저녁이면 ‘나는 가수다’ 때문에 법석이다. 그제는 김연우가 떨어졌다. 다음주엔 그의 자리를 뉴 페이스가 차지할 것이다. 3주 후에는 그들 가운데 또 한 명이 탈락하게 돼 있다. 쟁쟁한 가수 가운데 김연우보다 임재범의 실력이 월등한지는 모르겠다.

가히 오디션 공화국이다. 지난해 케이블 TV 엠넷의 ‘슈퍼스타 K2’가 성공한 이후 유사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봄철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면 오디션 프로가 10여개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피겨 스타 김연아까지 가세하니 오디션 열기는 태풍급이다. 8월에 대망의 ‘슈퍼스타 K3’가 본선을 진행하면 또 한번 나라가 들썩일 것이다.

이런 걸 그냥 트렌드라고 봐 달라면 당혹스럽다. 수명을 다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대타로 등장한 것이니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것이 촌스럽다거나,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한 오락 프로의 진화를 이루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의 공로를 모르지 않는다. 음악 향수층이 한결 두터워지고 다양해진 것이 사실이다.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패스트푸드 음식이라면 이들의 경연은 풍성한 정찬이라고 비교할 수도 있겠다.

공정성 뒤에 숨은 상업성

그러나 의미는 상당 부분 과장됐다. ‘위대한 탄생’은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공정사회의 가치에 부합한다는 설명은 타당한가. 아름다운 원석을 발굴해낸다는 취지에 충실한가. ‘나는 가수다’는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의 기대를 반영한 것일까. 그들이 만든 게임의 룰은 정의로운가. 대중 참여의 길은 민주적으로 활용되는가. 의문은 꼬리를 문다.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무책임하다. 대중의 참여를 끌어들인다는 명분 아래 판관(判官)의 지위를 양도해 버렸다. 그것도 아주 전략적으로. 셰인이 TOP3에서 떨어진 이유에 대해, 김연우가 꼴찌를 차지한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디션 무대를 ‘꿈의 구장’이라고 부르면서도 구장의 룰을 모른다. 책임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시청자 혹은 청중평가단에게 돌리면 그만이다.

이런 제작 시스템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방송의 상업성이다. 공정성을 내세워 프로그램에 대중을 끌어들이니 시청률은 보장되고 위험은 분산되니 꿩과 알을 다 먹는 셈이다. 이런 프로를 보는 시청자는 특정 출연자를 지지하게 마련이니 강한 중독성을 가진다. 그렇다고 수전 보일이나 폴 포츠처럼 숨은 진주를 발굴했다고 자신할 수 있나.

시청자를 볼모로 잡지말라

방송 외적인 부분에서 우려되는 것은 사회 분위기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매번 한 명씩 탈락시키는 오디션은 폭력의 기제와 익명의 그림자를 활용한다. ‘나가수’의 경우 목의 힘줄이 터지도록 열창한 가수를 모아 놓고 두두두두 드럼을 두드리며 긴장을 고조시킨 뒤 탈락자 이름을 부른다. ‘위탄’ 역시 취향을 달리하는 수십만 명의 문자투표로 승부를 가리니 ‘위대한 정글’에 다름없다.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의 검투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들 프로그램이 시스템 면에서 ‘전국노래자랑’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대중은 노래를 소비한다는 인식 대신 예술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극단적인 줄세우기는 자제되는 게 옳다. ‘나가수’의 경우 국내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이니 잘 손질하면 포맷 수출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는 더욱 가혹한 게임을 요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런 자학의 메커니즘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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