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걱정 가불
다다익선이다. 반찬도 선물도 많으면 좋고, 아껴주는 사람도 많으면 좋다. 더 좋은 건 돈이 많은 것 아닐까? 은행 광고 카피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등장하고, 그 말이 덕담인 양 흘러넘치던 때도 있었으니까.
어버이날에 부모님과 야외로 나갔다. 헐벗었던 산이 어느새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서 있었다. 가난한 산이 부자가 된 듯해서 보는 마음도 넉넉했다. 그래, 나부터도 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걱정부자, 그건 싫다.
주위를 둘러보면 걱정부자가 참 많다. 친정엄마, 남편, 중년의 친구들. 순위를 매기자면 대망의 1위가 걱정을 달고 사는 친정엄마다. 모처럼 가족 여행을 갈 땐 엄마에게 꼭 전화를 드려야 한다. 엄마가 우리 집에 전화했을 때 안 받으면 ‘얘한테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닷가라고 하면 무서운 바다에 왜 갔느냐며 불안해하신다. “멀리서만 보고 애들은 바다에 못 들어가게 해라”고 당부하신다. 반대로 산에 가도 걱정하신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많단다. 산 아래서만 놀아라.” 그때마다 나는 그러겠다며 못 지킬 약속을 남발한다.
오래 전 어버이날에 큰올케가 옷을 사드렸다. 엄마는 다음날 딸인 내게 전화를 걸어 맘에 안 드는데 바꿀 수 없느냐고 넌지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늙은이에게 맞는 옷 사기 어려우니 앞으론 사오지 말라고 전하란다. “돈 쓸 데도 많을 텐데…” 걱정하면서.
그래서 다음 어버이날엔 큰올케가 처음으로 선물 대신 현금을 드렸다. 이튿날 현금 받게 해줘 고맙다는 칭찬을 기대하며 전화했던 나는 헛물만 켜고 말았다. 엄마는 또 잠을 못 주무셨다는 거다. 자식 돈을 받아도 되나, 아까워서 어떻게 쓰나, 걱정돼서 밤새 가슴이 쿵쿵 뛰었단다. 그러고는 불면증으로 병원에 가고, 그걸 자식이 알까봐 또 걱정하신다. 도대체 엄마의 걱정은 끝날 줄을 모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 걱정이 30%, 별일 아닌 것 걱정이 22%, 어떻게도 바꿀 수 없는 사건 걱정이 4%다. 결국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다.
한번은 아주 건강한 친구랑 차를 마셨다. 친구는 치매에 걸릴까봐 제일 겁난단다. 치매에 걸리면 노인병원에 갈까? 안락사할까? 걱정하느라 잠을 설쳤다며 어떤 게 좋겠냐고 물었다. “아니, 가불할 게 없어서 걱정 가불을 하니? 그땐 치매 치료약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기가 막혀 면박을 줬다.
현명한 걱정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만 쓸데없는 걱정은 우리를 지옥으로 이끈다. 오죽하면 성경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이나 나올까. 들에 핀 꽃들도 뭘 입을지, 하늘을 나는 새도 뭘 먹을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헐벗은 산도 때가 되면 고운 비단옷으로 갈아입는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이다. 딱 하루라도 걱정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눈부신 봄날이다.
오은영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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