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씨네마 부산-PIFF 15년의 기록 (16)] 9월 전용관 개관 … ‘음력 영화제’ 설움 막내려
올 9월 영화제 전용관인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이 준공, 개관되고 그곳에서 영화제 개·폐막식이 열립니다. 오랜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지난 10년, 저는 영화제 창설 못지않게 전용관 확보에 심혈을 쏟았습니다.
부산영화제는 세계 유일의 ‘음력영화제’입니다. 추석에 따라 영화제 개최기간이 정해져 왔습니다. 추석영화 개봉 전날 영화제를 끝내거나, 추석 3주 후에 영화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영화 제작자, 배급업자, 극장주 입장에서 추석은 ‘대목’이어서 이 기간엔 극장을 빌릴 수 없죠.
이렇다 보니 부산영화제는 ‘게릴라영화제’ 같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영화제 기간을 침범했습니다. 제1회 영화제, 가까스로 추석 대목 직전에 영화제가 끝나도록 9월 13∼21일로 잡았습니다. 이 기간이 후쿠오카영화제와 정확하게 겹쳤습니다. 절친한 사토 다다오 집행위원장은 격분했고, 저는 영화제가 끝난 후 하와이영화제에서 만나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부산영화제를 9월 말∼10월 초로 옮기자 이번엔 밴쿠버나 산세바스티안 또는 로마 영화제와 겹쳤습니다. 저는 알랜 프레니 밴쿠버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날 때면 사과하기 바빴고,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밴쿠버의 아시아영화 담당자 토니 레인즈와 해마다 영화 선점 신경전을 치릅니다. 세계영화제작자연맹 중재로 산세바스티안과 부산에서 한 영화를 같은 시간에 상영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부산영화제는 전용관이 없습니다. 반면 세계 대다수 영화제는 전용극장을 갖고 매년 같은 시기에 개최됩니다. 칸영화제 전용극장 팔레 드 페스티벌. 이 건물에는 2400석 뤼미에르극장, 900석 뒤비시극장을 비롯해 10여개 상영관이 있습니다.
베를린 신시가지 포츠다머 프랏츠에 새로 지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는 3000석 좌석의 뮤지컬전용극장입니다. 영화제 기간에는 이 건물을 주 극장으로 사용합니다. 로테르담영화제 파테극장은 2층의 넓은 홀에서 7개 상영관을 출입하게 설계한 매우 실용적인 건물입니다. 산세바티안영화제 전용관 쿠루잘은 너무나 환상적입니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우루메아강과 코차만이 마주치는 해변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전용관을 갖고 싶었습니다.
대선을 앞둔 2002년 11월 9일자 부산일보는 ‘PIFF 전용관 세우겠다’는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민노당 권영길 등 4당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1면 머리기사로 게재했습니다. 기자와 제가 공모(?)해 만든 작품이었죠.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전용관 건립예산 100억원을 기획예산처에 요구했습니다. 예산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2003년 9월 5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부산을 찾아 영화인들을 만났습니다. 대학 후배였고, 제가 문화관광부 언론업무 주무국장일 때 최 대표가 조선일보 정치부장을 해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최 대표는 국회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40억원을 책정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사흘 뒤,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안상영 시장 건의를 받아들여 2004년 예산에 용역비 10억원과 설계비 30억원이 전격 반영됐습니다. 이에 따라 국비 230억원, 지방비 230억원 규모의 건축비가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460억원 건물은 전용관이 될 수 없고 적어도 600억∼700억원은 돼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과 2005년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방문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디즈니 콘서트홀과 시카고 야외공연장 등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그 도시를 상징합니다. 부산영상센터도 부산을 상징하는 건물이 돼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2003년 3월 10일, ‘신사고포럼’이 주최한 ‘PIFF 전용관 건립 어떻게 할 것인가’란 세미나의 주제 발표를 통해 외국 사례와 건립방향 등에 관한 복안을 밝히면서 여론 조성에 나섰습니다. 영화제 전용관은 해운대 바닷가에 짓자고 주장했습니다. 제1후보지로 옛 극동호텔과 토지공사 및 국방부가 소유한 땅을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공매절차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부산시에 매입을 건의했으나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500억원이면 모두 매입해 부산시가 독자적으로 건립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습니다.
제2후보지로 요트경기장을 제의했습니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위해 조성한 요트경기장 건물은 초라했습니다. 이걸 헐고 영상센터와 요트경기장을 통합해 새 건물을 짓자고 제의했지만 요트인들도, 부산시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산시 뜻대로 센텀시티로 결정됐습니다. 다행히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입주했고, 영화후반작업시설이 조성됐습니다. KNN방송 사옥이 바로 옆에 건설 중이고 앞으로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곳에 둥지를 틀면, 차선책이지만 잘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음은 설계 문제입니다. 저는 국제 공모로 건축가를 선정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초대작가선정위원회는 진통 끝에 스티븐 홀(미국), 버나드 추미(스위스), 쿱 힘멜브라우(오스트리아), MVRDV(네덜란드), 에릭 반 에게라트(네덜란드), 텐 아키텍토스(멕시코), 하이키넨-코모넨(핀란드) 등 7명의 건축가를 초대키로 결정했습니다. 2005년 10월 6일 제10회 영화제 개막식 날 그랜드호텔에서 7명 건축가의 공개설명회가 진행됐습니다. 1차 심사에서 3명으로 압축했고, 다음달 2차 심사에서 쿱 힘멜부라우가 설계자로 확정됐습니다.
최대 걸림돌은 예산 확보였습니다. 460억원은 처음부터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쿱 힘멜부라우는 2006년 4월 설계 결과를 보고하며 공사비를 1278억원으로 산출했습니다. 부산시, 문화부, 예산처 모두 반대했습니다.
저는 문화부와 예산처 설득 작업에 나섰습니다. 문화부 박양우 기획관리실장의 도움이 컸고, 예산처 신철식 정책홍보관리실장도 만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재웅, 윤원호, 허원재 의원 등 부산지역 국회의원과 김인세 부산대 총장, 신정택 부산상의회장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예산안은 KDI(한국개발연구원) 타당성 검토를 거치게 됐고, 1차 심사에서 691억원으로 상향됐습니다. 2008년 5월 최종 설계 결과 건축비는 1624억원으로 다시 늘었습니다. 부산시와 저는 또다시 로비에 나설 수밖에 없었죠.
영상센터 건립 기념식이 있었던 2005년부터 만 3년이 지난 2008년 10월 2일, 허남식 시장의 결단으로 예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공식을 갖고 2009년 1월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습니다. 2차 KDI 타당성 검토에는 현오석 원장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제 16년간의 숙원, 그리고 8년간의 노력 끝에 영상센터 ‘두레라움’이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부산영상센터는 부산시 건물이고, 건설 주체도 부산시입니다. 460억원 예산으로 부산시가 지어주는 대로 영화제 전용관으로 사용했으면 편했겠지요. 그런데도 부산영상센터 건립에 모든 열정을 쏟은 것은 이 기회에 1000년 후에도 부산이 자랑할 수 있는 건축물을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영화제를 떠난 입장에서 바람이 있다면, 기왕에 오랜 세월을 거쳐 조성되는 영상센터가 아시아영상문화를 선도하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변의 멀티플렉스 극장들보다 더 우수한 첨단 디지털장비와 시설을 갖춘 후에 개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새 건물에서 개·폐막식과 야외상영만 하고, 1년간 내부시설과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후 시험운영과 하자점검을 거쳐 내년 영화제 때 ‘전관 개관’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다려온 16년과 미래의 1000년에 비한다면 1년은 한 순간입니다.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