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베드로 (2) 가난한 조선족교회의 현실에 눈물만…
창춘교회에서 만난 조선족 여인은 내게 조선족 예배 장소를 알려주었고 우리는 일정을 조정해 조선족 예배장소를 찾아갔다.
창춘교회완 비교도 안 될 작은 공간에 60여명의 조선족 성도들이 모여 있었다. 십자가는 있었지만 한족교회 옆 작은 공간을 빌려 꾸민 것 같았다. 너무나 대비되는 열악한 환경에 마음이 아팠다. 당시 중국에서는 삼자교회 외에 이처럼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생적 교회나 가정교회가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
목회자도 없이 평신도가 인도한 이날 예배는 내게 또 다른 감동과 은혜를 갖게 했다. 예배 시작부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고 우리 일행은 특송을 부르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자매인 중국의 조선족들. 그들은 일제의 압제를 피해 압록강을 건넜고, 또 조국을 위해 싸웠던 독립군의 후예들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서로 교류를 끊고 살다 이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되니 참으로 감격스럽고 신기했다.
예배를 마친 후 동포들과 손을 잡은 뒤 서로 놓을 줄 몰랐다. 한 핏줄임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좋고 그저 기뻤다. 그런데 헤어지기 직전 한 조선족 여성도가 내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또 던졌다.
“선생님. 잘사는 남조선서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예배당 하나 지어 주시라요.”
무어라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이 음성은 내 폐부 깊은 곳을 찔렀다. 한국에 돌아와 40일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중국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만 감으면 조선족교회 성도들과 예배 드렸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 여성도의 음성이 내 귓가를 울렸다.
“선생님. 잘사는 남조선서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예배당 하나 지어 주시라요.”
이 음성이 연속 3일간 새벽기도 때마다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내게 조선족교회 건축의 사명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덜컥했다. 조심스레 교회건축 비용을 알아보니 한국 돈으로 5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1992년 당시로는 큰 액수였다. 나는 계속하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교회당을 지어 달라는 조선족 여인의 음성이 계속 들립니다. 5000만원을 교회건축비로 보내 그들이 쾌적한 시설을 갖춘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맘껏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때를 맞춰 후배가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찾아왔다. 당시 국내는 노조가 생겨나 회사마다 노사분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의류유통 전문가인 후배는 국내 유명 모피회사가 외국에서 자재를 들여와 최신 유행 모피코트 2000벌을 제작했는데 노사분규 때문에 급전이 필요해 당시 100만원 이상 하는 모피코트를 한 벌에 25만원씩 급매한다는 것이었다. 단 모두 다 사야 하는데 5억원이었다.
후배는 이 옷을 사서 백화점 몇 곳과 특판 계약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순간 이 일이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아닌가 여겨졌다. 물건을 보니 신상품으로 아주 좋았고 판매루트도 마련돼 있기에 후배와 나는 2억5000만원씩 마련하기로 했다. 이 경우 내가 얻게 되는 수익은 단기간에 1억2000만원이었다. 이 중 5000만원을 중국에 보내면 조선족교회를 건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난 그 큰 돈을 일주일 만에 급히 마련한 뒤 모피코트를 사서 보관창고로 가져왔다. 행거에 걸린 2000벌의 모피코트가 모두 중국의 영혼들로 보였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며 뿌듯했다. 그러나 이 일이 예상대로 잘 됐다면 나와 중국과의 관계는 교회건축만으로 끝났을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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