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서, 감히 영화를 돌렸다… ‘아이디어 컨스트럭터’ 오치우
서울 종로2가 옛 종로서적 뒷골목에 초록 그물 쳐 놓은 야구연습장이 있었다. 1980년대 초. 이 야구장이 아직 들어서지 않은 빈터에 고려대 복학생이 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삼성전자 신입사원 월급이 38만원이던 시절, 그는 여기서 하루 70만원을 벌었다.
골목은 한 집 건너 호프집이었다. 명동에서 놀던 젊은이들이 종로로 몰려오기 시작한 때다. 손님이 테이블에 앉으면 무조건 공짜 팝콘부터 한 그릇 갖다 줘야 했다. 주방마다 팝콘 튀기느라 정신없는 골목에서, 그도 손수레에 양은솥 올려놓고 하루 종일 팝콘을 튀겼다.
그리고 알바 10명을 고용했다(롯데리아가 시급 500원 줄 때 1만원 줬다). 매일 오후 4~5시, 딱 1시간 이들이 한 일은 팝콘 보따리 들고 호프집 돌며 “사장님, 귀찮게 튀기지 말고 이거 쓰세요. 5000원에 필요한 만큼 드려요” 하는 거였다.
첫날 알바 1명당 10곳을 돌아 5만원씩 받아왔다. 10명이니까 하루 매출 50만원.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골목에선 그 복학생만 팝콘을 튀기고 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아이디어 컨스트럭터(idea constructor)가 된 팝콘장수, 오치우(53)씨에 관한 것이다. 아이디어 컨스트럭터? 기획사 아이콘스엔터박스를 운영하는 그의 명함에 그렇게 적혀 있다. 건설사가 건물 지어 분양하듯 아이디어 발굴해 탄탄한 집처럼 구축하고 그걸 ‘분양’하는 일을 한다.
그는 기자였다. 서울의 한 일간지 출판국에서 일하다 신문들이 너무 재미없다며 그만뒀다. 신문사를 하나 차리겠다고 창간준비호를 만들었는데, 제호가 ‘재밌는 신문’이다. 일간스포츠와 스포츠서울이 스포츠지 시장을 양분하던 때 제안서를 돌렸더니 한희작 허영만 강철수 같은 만화가들이 원고를 줬다.
-‘재밌는 신문’ 콘셉트가 뭐였나(27일 서울 논현동 엔터박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당신은 재밌는 게 뭐냐? 웃기면 재밌나? 재미는 관심사다. 돈밖에 관심 없는 사람은 돈이 잘 돌면 재밌는 세상이고, 배추장수는 배추 잘 팔리면 재밌는 거다. 그렇게 재밌는 신문 만들려 했다.”
이 신문은 망했고 2년 정도 뚜렷한 직업 없이 글 써서 먹고 살았는데, 목표 수입이 월 200만원이었다고 한다(당시로선 큰돈이다). 타깃은 사보(社報)였다. 콩트를 주로 썼다. 10편쯤 미리 써놓고 사보 편집실마다 마감일에 죽 전화를 돌렸다. 원래 ‘마감’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호 원고 아직 안 들어왔죠? 제가 써놓은 거 있는데 그냥 이거 쓰세요.” 그렇게 월 200만원을 벌었다.
그의 글을 눈여겨 본 것은 ‘광고쟁이’들이었다. 프리랜서로 광고 카피를 썼다. 몇 줄 안 써도 돈은 엄청 많이 주더란다. 광고회사를 차렸는데, 정작 한 일은 출판이었다. 1991년, 동구권이 붕괴되고 대형서점마다 사회과학서적 코너가 자취를 감췄을 때다.
“출판계에 돌아다니던 소설 원고가 있었어요. 정약용에 관한. 누구도 출판하려 들지 않았죠. 삼진기획에 이거 100만부 안 팔리면 내가 100만부 사겠다, 출판하자 했어요. 실무자들은 미친 놈 취급하는데 오너가 부르더군요.”
그의 생각은 이런 거였다. 사회과학 독자는 정기적으로 책 사던 이들이다, 그들을 위한 서점 코너가 통째 사라졌다,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그들에게 뭔가 대체재를 쥐어줘야 한다, 그게 뭘까? 출판시장 관찰하다 발견한 게 ‘민족소설’이란 새 장르다.
삼진기획 사장을 설득해 펴낸 5권짜리 ‘소설 목민심서’는 15개월 만에 270만부가 팔렸다(지금까지 누적 판매부수는 600만부쯤 된다). 기존 사회과학 독자, 젊은 남자 직장인, ‘오피스 레이디’라 불리던 여직원 그룹, 중고생 등 5개 독자층에 각각 다른 광고를 했다.
‘베고 자도 좋은 책, 소설 목민심서’. 중고생을 겨냥한 광고카피였다. 책상 위에 쌓인 이 책 5권을 베고 잠들어 있는 고교생 사진도 곁들였다. 너무 좋은 책인데, 공부에 치인 너한테 차마 읽으라곤 못하겠구나, 그냥 베고 자렴, 뭐 이런 메시지였다.
모피코트를 팔아야 한다. 당신이라면 어디서 팔겠나? 아프리카에서 모피 파는 얘기는 식어빠진 커피 같은 농담인데, 그는 정말 하와이에서 모피를 팔았다. 1990년대 중반 국내 모피업체 관계자가 판매 전략을 자문해 달라고 왔다.
“지금이야 하와이가 대중적 관광지지만, 그때는 부유층 계절 휴양지였어요. 유럽에서 겨울을 피해 쉬러 온, 휴가 마치고 돌아가면 모피가 필요한 잠재적 고객이 모여 있는 거예요.” 그 회사는 세계 최초로 하와이 호텔에서 모피 전시회를 했고, 대박이 났다.
‘청바지 1벌, 100만원에 팔겠습니다. 단 100명에게만.’ 1996년 12월 이런 신문광고가 게재됐다. ‘다르크’란 신생 의류업체 광고다. “100만원에 파는 대신 100년 동안 애프터서비스 해주고, 원할 경우 신제품으로 바꿔준다”고 덧붙였다. 역시 그의 작품이다. 과소비 비판도 있었지만, 100벌이 매진돼 더 만들어야 했고 그 회사 인지도는 높아졌다.
‘황금굴비’ 기억하시는지? 2001년 전남 영광의 한 수산업자가 영광굴비 10마리를 200만원에 팔았다. 전남 영광 칠산 앞바다에서 낚시로 잡은 참조기에 금분을 발랐다.
“망해가던 굴비 업자가 찾아왔어요. 고려 인종 때 귀양 간 이자겸이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진상했다는 게 굴비예요. 전통 방식대로 만들면 너무 오래 걸려서 도저히 지금 시중가격의 영광굴비가 나올 수 없다더군요. 영광굴비의 인기가 정작 영광굴비를 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는 거였죠.”
어떻게 진짜 영광굴비를 차별화할까 생각하다 우황청심환의 금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씹어 먹는 우황청심환이 잘 흡수되라고 금박 입히듯 굴비에 식용금분을 입히자고 했다. 다른 굴비와 달라 보이면 되는 건데, 금분은 이점도 많다. 열전도율이 높아 굽는 시간이 줄고 맛도 보호된다는 거다. 그러나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며 판매가 금지됐다.
몇 해 뒤 중국의 한 쇼핑센터 론칭을 기획해주러 칭다오에 가서 꽤 돈을 벌었다. 칭다오 중심가에 한식당을 열었다. ‘황금굴비 정식’을 주메뉴로 할 생각이었다. 어느 날 동네 폭력배들이 ‘보호비’ 내라며 몰려와 식당 창문을 모조리 박살냈다.
오씨는 칭다오 당서기에게 ‘나는 중국에 마오쩌둥이 살아있는 줄 알았다’고 시작하는 편지를 썼다. ‘와보니 인민을 사랑했던 마오쩌둥의 정신은 없고 깡패만 있다. 아마존 악어농장에 투자하려다 중국을 택했는데, 여긴 악어보다 더 악한 게 너무 많다. 나는 떠난다.’ 당서기는 오씨를 찾았다. 얼마 뒤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산둥성 투자유치 행사의 기획을 그에게 맡겼다.
그를 만난 건 재·보궐선거 날이었다. 선거 기획도 했었다고 한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경기도 광명갑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배우 이덕화씨를 도왔다. 원래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 선거운동원들이 매일 택시 타고 다니며 여론을 수집했다. “이덕화, 딴따라가 뭘 안다고…” 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오씨는 이덕화의 첫 유세 연설문을 “정치는 생선입니다”로 시작했다. “저 같은 초짜가 정치를 뭘 알겠습니까. 고민해보니까 정치는 생선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치란 생선은 가장 신선해야 합니다. 꽁치, 갈치는 상하면 내다버리면 되지만 정치는 상하면 국가가 다칩니다.”
이 연설은 많은 언론에 보도됐고, 이덕화는 선거 막판 경쟁후보를 지지율에서 5% 포인트 앞섰다. 김대중 국민회의 대표가 지원유세 오면 뒤집힐 수 있는 수치다. 오씨는 “지구당사에 현수막을 내걸자”고 제안했다. 내용은 ‘정치 초년병이 정치원로 김대중 대표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신한국당 이덕화’.
“선거캠프의 반대여론에 덕화형(그는 이렇게 불렀다)은 포기했어요. 저는 인접한 경기도 원미을의 이사철 후보(신한국당)에게 갔어요. 역시 초년병이었고, 그는 (이 현수막을) 걸었어요. 선거 전날 언론에 크게 보도됐죠.” 이덕화는 떨어지고, 이사철은 당선돼 초선으로 당 대변인까지 맡았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드나요(궁금한 건 이거였는데, 얘기 듣다보니 질문이 늦어졌다)?
“20~30대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에게 배웠어요. 이외수(소설가), 전유성(개그맨), 이덕화, 한희작, 이규형(영화감독). 외수형은 무작정 찾아가서 친해졌고, 유성이형은 제가 자꾸 엉뚱한 얘기 하니까 한 선배가 ‘그런 건 전유성이랑 해라’ 하면서 소개해줬죠. 두 분은 세상을 관찰하는 법, 그 결과물을 실행하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어떻게 관찰해야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죠?
“나와 다른 관점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죠. 종이컵은 옆에서 보면 직사각형이지만, 위에서 보면 원이에요. 둘 다 옳은데, 자기만 옳다고 우기면 싸움이 나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 새로운 관점의 아이디어가 나와요.”
25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강형철 감독의 영화 ‘써니’가 상영됐다. 클래식의 공간에서 대중예술인 영화를 튼 것은 처음이다. 비보이(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 축하공연까지 열렸다. 예술의전당은 ‘우수영화 특별시사회’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이걸 성사시킨 영화계 논리는 “예술의전당 지을 때 문예진흥기금 쓰지 않았나. 그 돈, 영화 관람객들이 낸 세금이다. 그럼 영화를 위한 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나”였다. 한국배우협회가 앞장섰는데, 협회장 이덕화씨가 기획이사로 오씨를 영입했다. 그는 “사장될 수도 있는 좋은 한국영화에 기회를 주고 싶어서” 이 일을 맡았다고 한다. 오치우의 아이디어였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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