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지배하는 ‘검은 손’에 저항하라
‘먹거리반란’/에릭 홀트-히메네스, 라즈 파텔/따비
#아시아에서.
인도 중산층의 눈부신 성장과 IT 붐에 쏟아지는 찬사 뒤편에서는 빚에 몰린 농민들의 자살이 농촌을 휩쓸었다. 1993∼2006년 무려 15만명에 이르는 인도 농민이 빚에 시달리다 굴욕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쌀 곡창지대로 손꼽히던 필리핀은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필리핀 국민들은 2008년 국제 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항의시위에 나섰다.
#북아메리카에서.
국민의 8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이티에서는 1986년 미국의 비호 아래 들어선 군사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차관을 받는 대가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면서 재앙이 시작됐다. 87년 아이티는 매년 쌀 소비량의 4분의 3을 국내생산으로 충족했는데 2008년에는 이를 미국산으로 메웠다. 같은 해 국제 쌀값이 배로 뛰자 아이티 국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폭동을 일으켰다.
신간 ‘먹거리반란’은 이처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식량 위기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하고 그 원인을 파헤친다. 저자 에릭 홀트-히메네스와 라즈 파텔은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심화되는 기아와 빈곤, 생태파괴의 뿌리를 분석하고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식량발전정책연구소’의 소장과 연구원이다. 원서는 2007∼2008년 식량 위기가 불거진 이후인 2009년 출간됐다.
책은 식량 위기의 일차적 원인으로 요동치는 유가, 중국과 인도에서 급증하는 육류 소비,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기상재해, 바이오연료 사용, 국제투기자본 등을 꼽는다. 저자들은 그러나 이런 원인은 표면적일 뿐이며 위기를 몰고 온 장본인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장본인은 바로 세계화의 허울을 쓰고 시장개방을 압박하는 북반구 산업 국가들과 이들의 행태를 비호하는 세계기구 그리고 ‘세계 먹거리 체계’라는 것이다. 특히 세계 먹거리 체계는 곡물메이저를 중심으로 결합한 다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지배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데,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식량의 생산과 유통, 소비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먹거리 체계의 독점적 지배 추세는 미국 내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에서는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300만명의 농장주와 3억명의 소비자 사이에서 푸드달러(소비자가 최종 먹거리에 지출하는 금액)의 대부분을 집어삼키고 있다. 1950년대에는 푸드달러의 40∼50%가 농민에게 돌아갔지만 오늘날에는 그 비율이 20% 정도에 불과하다.”(47쪽)
저자들은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반구 식량자급률의 급락, 소농의 몰락, 토양과 물의 오염 등 농업의 생태다양성을 해체하는 먹거리 체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을 통해 새 먹거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아울러 단순히 연구 자료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라질의 ‘무토지 농촌노동자 운동’이나 중남미의 ‘농민에서 농민으로 운동’, 에티오피아의 ‘티그라이 프로젝트’, 미국의 ‘지역사회 지원 농업’ 등의 사례를 상세히 소개한다.
지난해 7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공동으로 세운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우리말로 옮겨졌다. 녀름은 번역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 처한 식량 위기를 진단하고 식량주권 확립을 위해 국내에서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책에 또 다른 장을 추가해 다룬다. 식량자급률이 25%로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먹거리 정의(正義)를 찾는 일은 단순히 지금보다 나은 먹거리를 더 많이 먹자는 운동이 아니라 삶의 주권을 찾는 근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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