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파란 신부 파란 여름

Է:2011-04-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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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조미자] 파란 신부 파란 여름

근무지를 옮기고 한 달쯤 되었을까. 같이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들이 온다는 시간이 되었는데 꽃 배달이 먼저 왔다. 파란색 항아리에 다소곳하게 피어난 파란 수국. 꽃은 겹꽃으로 화관 모양을 한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피어 있었다. 마치 천경자 작가의 작품 ‘수국’이 그대로 걸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잠자코 들여다보니 곧이라도 내 몸에 파란 물이 들 것 같아 서늘해졌다.

나는 꽃 중에서도 청보라꽃을 좋아한다. 산에 가면 용담, 시골집 토담 길에 수줍게 피어나는 달개비, 여름날 새벽 꽃잎을 펼치는 파란 나팔꽃. 강원도 쪽으로 여행하다 보면 차창으로 벌개미취와 도라지꽃을 보느라고 고개가 삐뚤어진다. 따뜻하기보다 차갑고 도도한 색, 하지만 어딘가 냉정하고 이성적인 듯해서 맘에 든다.

사람들이 들어서자 나는 인사말을 건넸다. “제가 파란 꽃을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아셨어요?” “꽃말이 진심이라고 해서 수국을 골랐어요.” 수국은 어떤 땅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흰색 수국도 보았고, 붉은색 수국도 보았다. 그런 수국의 꽃말이 진심이라니. 의외였다.

나는 그들이 돌아간 후 수국의 꽃말이 진심이라는 게 농담이 아닐까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백색 수국은 절개 없는 여인과 같아서 ‘변하기 쉬운 마음’, 하늘색은 ‘냉담’, 분홍색은 ‘소녀의 꿈’, 그럼 진심은? 나는 인터넷 화면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꽃의 색깔이 쉽게 변하지만 부케를 닮아 ‘진심’이라는 꽃말도 있었다.

결혼식에 가면 신부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꽃을 묶은 부케를 손에 든다. 그런데 흰 드레스에 파란 수국 화관을 머리에 이고 파란 수국 다발을 손에 든 신부를 생각해보니 그처럼 신비하고 매력적인 신부의 모습을 자아낼 꽃이 또 있을까 싶었다. 거기에 꽃말은 진심. 상대를 향한 진심 하나라면 살아가면서 어떤 오해도 풀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뉴욕에서 꽃집을 하는데 수국을 장미처럼 줄기를 잘라 팔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파란색의 시원한 매력에도 그다지 팔리지 않았다. 그는 팔기를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연출을 하였다. 꽃집의 한쪽 벽을 파란 수국으로 채워버린 것이다. 그러자 꽃집은 마치 밀려오는 파도처럼, 푸른 바다처럼 수국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파란 유혹에 빠진 사람들은 한 다발이 아니라 여러 다발씩 사가게 되었고, 그 가게는 뉴욕에서 수국을 가장 많이 파는 가게가 되었다고 한다.

올 여름도 더위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진심’을 안은 신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하얀 원피스를 입고 꽃집에 들르고 싶다. 선명한 청색이 손톱 끝까지 물들일 수국을 한 아름 사는 거다. 에어컨 아래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을 그들에게, 이 무슨 변덕이냐며 깜짝 놀랄 그들에게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고 싶다. 파랑으로, 진심으로….

조미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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