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딜레마’… 편익과 불안사이 선택 갈림길
“과연 얼마나 안전해야 안전하다고 할 것인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원전의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에서 비롯되는 사고 안전대책을 놓고 한때 정부 일각에서처럼 ‘절대적’이라는 단정적 표현을 쓰는 것은 위험하다. 원전 덕분에 누리는 편익을 모두 포기할 것인지도 핵심 쟁점이다. 원전의 중·장기적 대안은 없는가. 한 나라가 원전으로부터 누리는 편익에 비추어 감당할 만한 위험은 어느 선이냐에 대한 사회적 타협에 따라 원전 확대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이후의 세계=지난달 하순부터 한동안 강원도 삼척시 동해안 7번 국도변은 원전 유치 찬성 플래카드가 빼곡했다. 신규 원전 건설 후보지인 삼척시는 유치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민심이 흉흉하다. 원전의 안전성은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의 주요 쟁점이 됐다.
원전 유치 예정 부지인 건덕면 죽산리, 부남리 등을 중심으로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삼척시는 공무원과 지역기업을 동원해 찬성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지역 대기업 관계자는 “처음에는 기업에 자체 명의로 플래카드 1만장을 제작해 달라고 했다”며 “그것은 무리라고 해 1000여장을 만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이광우 기획홍보실장은 “여러 여론조사 결과 원전유치 반대 의견이 7대 3 정도로 더 많다”면서 “경제성 논리가 안전성 논란을 이겨내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국장은 “후쿠시마 이후 세상과 이전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전 부지 선정 작업이 후쿠시마 사태 이후 더 어려워질 것만은 확실하다.
◇유해성(有害性)과 위해성(僞害性)=유해성(hazard)은 화학물질, 독극물, 병원균, 기계·기술, 장난감 등이 스스로 지니는 위험요인을 일컫는다. 어떤 물질이 지닌 유해성의 강도는 노출되거나 섭취했을 때 어느 정도 피해가 있는지로 측정된다. 유해성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나 잠재력이다.
반면 위해성(risk)은 어떤 물질이 사람에게 실제로 해를 끼칠 가능성이다. 유해성이 아무리 큰 물질이라도 땅속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미치는 위해성은 제로라고 볼 수 있다. 위해성은 유해성의 강도에 노출될 확률을 곱한 것으로 공식화할 수 있다. 식품의 건강 위해성은 그 식품의 유해성에 일정기간 평균섭취량을 곱한 값이다.
사람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중요한 것은 위해성 평가다. 벤젠, 카드뮴 같은 발암성 물질이 강력한 보안장치가 있는 특수실험실 안에서만 존재한다면 사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원자력발전도 연료로 쓰는 농축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유해성은 매우 높지만, 방사능의 노출 확률은 지극히 낮아 위해성은 낮은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방바닥에 있는 신경안정제 수십 알과 물컵은 자살하려는 사람이나 유아에게 매우 위해하다.
◇객관적 위해성과 주관적 위험=어떤 사물에서 실제로 느끼는 위해성(위험)은 실제 위해성과 다를 수 있다. 자동차와 비행기를 비교하면 객관적 위해성은 자동차가 훨씬 높지만, 사람들은 비행기 여행에 공포감을 더 느낀다. 비행기 사고는 발생할 확률은 자동차보다 낮지만, 났다 하면 대형사고일 때가 많아 더 주목을 받는다.
주관적 위해성에는 노출 확률 또는 유해성이 실현될 확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대신 평소 편익, 선택하게 하는 자발성, 통제가능성, 친숙성,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 정도와 규모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원전 사고로 죽을 확률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죽을 확률보다 훨씬 낮다. 반면 자동차 운전은 우선 편익이 크다. 또 운전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지만, 마을에 원전이 들어서는 것을 막을 힘은 거의 없다. 사람은 비자발적 위험을 실제보다 더 크게 느낀다.
원전은 거의 모든 주관적 위해성 항목에서 매우 높은 위험 인식도를 심어준다. 즉 원전은 객관적 위해성과 무관하게 주관적 위해성이 매우 큰 기술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발전연료 가운데 원자력만 유일하게 안전성을 홍보하는 데 연간 100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편익과 비용의 타협점, 사회적 합의=신기술, 기계, 새로운 화학물질을 이용할 때 우리는 편리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편리함에는 위해성과 비용이라는 대가가 뒤따른다. 석면, DDT, 유기인계 농약, 자동차, 휴대전화 등은 긴 리스트의 극히 일부이다. 안전성이란 결국 편익과 위해성이라는 상충하는 두 변수 가운데 적정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원전에 대해 전 과정(라이프사이클)에서 위해성을 평가해야 한다. 그것은 수치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다. 원전사고는 가동 중이 아닌 먼 미래, 즉 방사성폐기물 보관 중에도 발생할 수 있다. 아직도 진행형인 체르노빌 원전 사태의 후유증은 세대를 이어 생명과 건강을 해치고 있다.
원전은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보다 위해성이 낮다고 평가될 수 있다. 원유나 석탄은 채굴·운송 과정에서 많은 인명피해와 해양오염을 유발한다. 그러나 원전은 대부분의 재생에너지보다 위해성이 높다. 고려대 조용성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대안들이 아직 원전의 편익을 대체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상과 현실 간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원전의 위해성 평가는 상당히 주관적이다. 우리 국민들이 위해성을 용인할 만한 수준인지에 대한 판단은 여론과 정부의 결단에 달려 있다. 위해성이 매우 높지만 너무 많이 의존해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자동차다. 원전이 장차 자동차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지, 아니면 대부분의 기술이나 자원처럼 한때의 호시절만 구가하는 징검다리적 에너지로 그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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